묵상자료 7494호(2021. 11. 22. 월요일).
시편 시 40:11-13.
찬송 17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녀가 말했다. “창조적 유람을 할 때는, 무의식 상태로 있으면 안 된다. 생각하고 성장해야 한다.” 삶을 단계로 나눈다면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겁니다. 아기에서 어린이로 성인에서 노인으로, 이건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지요. 한 단계가 끝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육체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모두가 그러합니다. 하지만 마음이나 정신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애 어른이라는 말이나,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마음이나 정신은 육체와 다른 방법으로 성장 과정을 밟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에 기준해서 삶을 단계로 나누는 지구촌 대부분에서와는 달리, 인도에서는 전통적으로 삶을 이런 식의 네 단계로 나눈다고 합니다. 먼저 <베다> 등의 고전을 배우는 범행기(梵行期), 사회에서 활용할 지식을 습득한 기간입니다. 다음은 집에서 머무는 가주기(家住期), 배운 지식으로 가정을 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 시간입니다. 세 번째 단계가 산에서 지내는 임서기(林棲期), 집을 나와 숲속에서 명상을 하며 자아를 찾는 시기고요. 마지막 단계가 세상을 떠도는 유행기(遊行期), 깨달은 것을 세상에 전파하는 시기입니다. 그 시기가 몇 살부터 몇 살까지여야 한다는 식의 나이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단계를 완성하고 마치는 시기가 개인마다 다르니까요.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마지막 단계까지 가는 게 목표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 대부분은 배운 지식으로 가정을 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 가주기에 머물다 세상을 떠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게 인생의 전부며 목표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요. 하지만 다음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있을까요? 미국의 작가 베리앤 윌리엄슨이 말합니다. “창조적 유람을 할 때는 무의식 상태로 있으면 안 된다. 생각하고 성장해야 한다. 기뻐하고 꿈을 꾸되 기도해야 한다.” 생각하고 성장한다는 건, 마치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달음질치듯 속도를 내다간 발을 헛디뎌 떨어질 수 있으니,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올라가야 합니다. 또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단단하게 자리를 잡은 후에, 다음 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가면 됩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4년 11월 24일 방송>
2. “만민에게 하나님의 영이 내리리라(1-2, 9-17절)”을 읽었습니다. 제가 전달하는 묵상자료의 성경본문은 공동번역 성경인데, 장과 절이 개역 개정판과 달라서 말씀드립니다. 요엘서 3:1-5은 개역개정판에서는 2:28-3:6까지를 말하고, 4:1-20은 개정판에서는 3:7-21까지가 됩니다. 이런 연유는 최초의 번역 성경인 라틴어 역본인 불가타(Vulgate)의 분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문 내용은 변함이 없고, 장과 절만 다른 셈입니다. 본래 우리 신구약 성경은 장과 절이 없이 창세기, 출애굽기, 마태복음 등 책 이름으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자신이 읽은 곳까지 점을 찍었고(pericope), 다음에는 그 점 찍은 데서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인쇄업자들이 불편해졌습니다. 그래서 깊은 성경 지식도 없는 인쇄공이 읽어 내려가다가 적당한 곳에 절을 붙이게 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오늘날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곤란을 겪는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장과 절이 잘못 붙여진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성서공회에서는 인쇄업자의 실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인간의 부족함과 실수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삼자는 것입니다. 참고로 장을 구분한 이는 캔터배리 대주교 스티븐 랭톤(1150-1228)이며, 절의 구분은 파리의 인쇄업자 로버트 스테파누스(1551년)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영이 만민에게 내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주제입니다. 이 말씀은 적어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선민(選民)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이 만민에게 오신다니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을 것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유대인에게만 제한해서 관계를 맺어왔을까? 오히려 처음부터 모든 사람을 위해 성령님은 활동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금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요한복음서는 성령님의 역할을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이해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에 감화 감동하는 일체에 성령께서 도우신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요한복음 14-16장에 언급된 성령에 관한 주님의 말씀은 갑작스럽게 성령님을 역사의 무대에 소환(召喚)하신 것이 아니라, 창조역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하셨고 활동하셨던 하나님을 일깨웠을 뿐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창 1:26, 3:22). 본문에서 주목할 말씀은 “너희의 아들과 딸은 예언을 하리라. 늙은이는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리라.”(1절) 는 말씀입니다. 예언, 꿈 그리고 환상은 미래를 현재화하는 단어들입니다. 인간들에게 상상조차 불가능한 미래의 일들이, 성령님에 의해서 새로운 관심과 가능성으로 바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묵상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진리 :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 그리고 만민의 하나님이심. / 옵 1:17-21. (0) | 2021.11.24 |
---|---|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만 제 자리를 지키면 충분합니다. / 나훔 1:1-13. (0) | 2021.11.23 |
지도자 한 사람의 영향력. / 느 13:1-31. (0) | 2021.11.20 |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이름들. / 느 11:1-36. (0) | 2021.11.19 |
감사세포를 깨우라. / 느 10:28-39. (0) | 2021.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