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610호(2022. 3. 18. 금요일).
시편 시 66:18-20.
찬송 41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구 300만 명에 자원도 없는 작은 나라 아르메니아는 왜 소련에서 독립하려고 했을까? 나는 궁금해 한 적이 있었다. 돈 벌러 러시아에 간 가릭을 보면서 그런 의구심은 깊어졌다. 소련 체제 아래 있었다면 아르메니아의 경제는 지금보다 나아졌을지 모른다. 종교 때문일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독자적인 하나의 기독교 교단이다. 신자 수는 세계적으로 900만 명 정도인데, 아르메니아 국민의 95%는 사도교회 신자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이슬람인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와 사회주의 소련 체제에서도 믿음을 지켰다. 그래도 궁금증이 속 시원히 풀리지는 않았다.
한때 나도 교회에 다녔다. 고등학교 때 절친이 거의 협박해서 끌고 갔다. 교회의 경건함과 평화는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우리 집에는 고함과 비난, 감정의 폭풍과 침묵이 폭발 역치에 늘 다다라 있었다. 교회는 내 삶의 탈출구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열두 사도의 이미지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예수를 묵묵히 따랐고, 기꺼이 고난을 겪었다. 순교라는 목표가 내 삶에 처음 흔적을 남겼다. 그때 나는 아프리카에서 환자를 돌보며 선교하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루크(Luke)가 내 영어 이름이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루크는 사도이자 의사였다. 이런 생각에 잠긴 나를 누군가 살짝 쳤다. 난 뒷짐 지고 있던 팔을 황급히 풀었다. 그리고 더 묻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예의를 지키며 응시할 때였다.” 정상훈,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pp.90-91.
2. “결혼 문제(1-9절)”을 읽었습니다. “결혼은 해야 하나, 안해야 하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을 남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제자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고 또 하나의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소크라테스 본인도 악처를 만나 고통 받았다고 하니, 누구보다도 결혼의 양면성을 잘 알았을 것이고, 그런 깨달음이 담겨선지 이 말은 오랜 세월 공감을 얻으면서 전해졌고, 지금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결혼은 문제로 가득한 모든 사람들 앞에 던져진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남자 교우들에게 결혼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권고합니다. 그 이유로 결혼한 남자와 여자는 자신의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는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남존여비의 사회 배경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모든 사람이 독신으로 지내고 있는 자신처럼 살기를 바란다고 충고합니다. 사실 바울 사도는 결혼한 이력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음행이 성행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욕정에 불타고 있다면, 결혼을 하는 게 낫겠다고 권고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결혼을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또 다시 헷갈리게 하는 충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언듯 들어서는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결혼이 가장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듯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에 따라 심각한 문제는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문제 풀이에는 공식이 있는데, 결혼의 문제도 공식으로 풀어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인격적 상호교제가 필수적이라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남자나 여자 모두 상대방을 하나님께서 배필로 정해주신 소중한 인격체라는 인식 말입니다. 말과 행동이, 신앙과 생활 전반에 있어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한, 결혼한 부부로써 효과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만일 모든 부부들이 자기중심적이거나 이기적인 욕망에서 한발자국 벗어나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 분명한 공식을 무시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삶을 고집함으로 행복한 부부의 축복을 누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의 속담에 결혼 생활에 대한 주기율이 있다고 합니다. 곧 결혼 후 석 달은 깨가 쏟아지고, 이후 3년은 엄청나게 다투고, 나머지 30년은 소 닭보듯 한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잘못된 주기율입니다. 특히 결혼에는 앞서의 인격적 교제 외에도, 양면성이란 게 있습니다. 사랑의 달콤함의 앞면과, 사랑의 아픔의 뒷면이 있다는 뜻입니다. 어느 한쪽만을 사랑할 때 결혼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장점과 단점, 사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모두 감싸 안는 온전한 사랑을 할 때, 결혼은 행복한 보금자리가 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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