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704(2022. 6. 20. 월요일).

시편 시 80:16-19.

찬송 24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갈매기가 바다 위를 끼룩대며 정겹게 나는 풍경은 참 평화롭게 다가옵니다. 해안가에 매어 있는 고깃배와 마침 그 위를 나는 갈매기, 바닷가 풍경에 빠지지 않는 것들이지요. 참 많은 시인들이 갈매기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바다를 자유롭게 날고 있는 갈매기에서, 한없는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어느 땐 처연한 외로움을 발견하기도 하지요. 이은상 시 채동선 곡 <갈매기> 역시, 갈매기를 통해 자유로움을 꿈꾸는 이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갈매기는 한 군데만 앉아 있는 것이 무척 갑갑한가봐. 그래서 밤낮 바다위로 빙글빙글 돌지요. 갈매기는 바다 위 하늘로 날아도는 것이 무척 자유로운가봐. 인제는 나도 거리의 먼지 속을 휘휘 시원히 벗어나서, 갈매기마냥 산으로 바다로 푸른 하늘 뚫고 가고 싶어. 갈매기의 마음과 이 내 심정은, , 둘 만이 알 뿐이라오.”

   구구절절 쓸쓸함이 스며들어 있는 곡이지요. 단조로 이어진 곡의 중간에선 마치 오페라의 아리아에 나오는 듯 한 고음의 연결 음이 계속 이어집니다. 가곡에선 보기 드문 비 프렡음까지 나오게 되지요. 작곡가가 바이올린 연주자였기 때문에 그의 선율은 언제나 애틋하다는 그러한 평을 받기도 하지요. 고독한 갈매기의 꿈을 이렇듯 아름답게 꾸며줄 수 있었던 것은 채동선의 생애 역시 고독으로 일관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620일 방송>

 

2. “인사(1-2)”, “거짓 교설에 대한 경고(3-11)” 그리고 자비에 대한 감사(12-17)”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디모데와 디도는 바울의 제자들로 많이 아끼고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두 제자에게 보낸 편지를 <목회서신>이라고 분류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분명히 개인 이름을 수신자로 한 편지이지만 사신(私信)은 아니라는 게 신약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수신자인 디모데와 디도에게 자신들이 섬기고 있는 지역교회들을 잘 지도하기를 바라는 목적에서 쓰인 공식적인 편지라는 것입니다. 당시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를 맡고 있었고, 디도는 그레데 섬교회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는 바울의 첫 번째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개종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고(딤전 1:2), 둘째 전도여행에서는 바울을 동역하게 되었습니다. 디도 역시 바울에 의해 개종하였고(1:4), 바울의 3차 전도여행 때는 고린도로 파송받은 적도 있었습니다(고후 7:5, 8:23). 대체로 목회서신의 기록 목적은 3가지 이유였습니다. 첫째는 임박한 종말론을 수정할 필요 때문이고, 둘째는 세상 속에서 존재할 교회 상을 정립할 목적이었으며, 셋째는 교회 안팎으로 기승을 부리는 이단들에 대해서 대처할 필요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하나님께 불림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입니다(에클레시아란 단어는 불림을 받은 사람들이란 의미). 그래서 교회는 마치 구약의 선민(選民)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서 되어진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항상 두 종류의 무리들에 의해서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는 교회 안에 있는 거짓 교사들인데, 사도는 그런 사람들의 특징을 그릇된 교리를 가르치거나, 소설을 쓰는 이야기에 몰두하게 하거나, 족보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4). 우선 그릇된 교리란 복음이 아니라 율법적 신앙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예수 공로로 죄와 죽음에서 구원받는 게 아니라 선행으로 구원받는 듯한 주장을 일삼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소설 같은 이야기에 정신을 팔게 하는 자들인데, 헬라 문화권에서는 쉽게 있을 수 있는 신화들입니다. 그리고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빠지는 것인데, 이것은 유대인들이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성별하는 것은, 유대인들 자신에게 있는 장점들 때문임을 자랑함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교회 밖에 있는 이단적 주장들인데, 대표적인 사람들이 영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영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심판받을 죄를 짓지 안는다는 해괴한 주장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으로 깨달음을 얻어 죄로부터 벗어난 사람이므로, 죄를 짓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라는 주장입니다. 일종의 속임수임에 분명합니다. 많은 이단 괴수들이 온갖 부도덕한 삶을 살면서도 그것을 은폐하고 탈출구로 삼은 주장입니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들이 현명할 이유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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