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730(2022. 7. 16. 토요일).

시편 시 87:1-3.

찬송 20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 사람들은 체질을 나눌 때, 사상 체질에 따라서 소양인, 소음인, 태양인, 태음인, 이렇게 네 가지로 구분하기도 하지요. 서양에서도 이렇게 사람의 기질을 네 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요. 그 네 가지 기질은 과잉 짜증, 과잉 우울, 과잉 침착, 그리고 과잉 다혈질입니다. 모조리 다 과잉 자가 앞서는 특이한 구분법이지요. 그만큼 어떤 쪽에 속하든 누구든 다 조금씩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이런 뜻일 텐데요. 바로 그 점에 기질이나 체질은 달라도 우리 모두를 서로 달라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거겠지요. 어떤 부족한 점 또 너무 넘치기 때문에 남들 보기에 뭐한 점, 그러한 점들을 다 같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과잉 짜증이라던 지 과잉 우울의 유형에는 좀 속하고 싶지 않은 게 우리들 마음인데요. 자신의 과잉으로 치닫는 그런 기질 같은 것을 다스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KBS FM 1, FM가정음악, 2007712일 방송>

 

2. “모두가 죄인이다(9-20)”을 읽었습니다. 지난 저의 가족여행에서는 달랑 두 권의 책만을 들고 떠났습니다. 한 권은 신구약 성경과 찬송가를 합본한 것과, 다른 한 권은 신지영교수의 <언어의 줄다리기>였습니다. 소설처럼 연속성을 가진 내용의 책은 한꺼번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여행 중에 읽을 만한 책은 전혀 다른 여러 편의 주제를 다룬 책이면 좋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시대에 따라서 바뀌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더욱 분명히 갖게 되었습니다. 책에서는 우리 시대에 걸맞지 않은 비민주적인 용어들이 많다는 것을 조목조목 일깨우고 있었는데, 그 첫 번째 등장한 단어가 대통령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이 단어는 우리 헌법 정신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봉건주의 시대의 용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에 나오는 단어들도 하루 속히 고쳐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눈뜨게 되었습니다. 요즘 제가 한 달에 한 차례 설교하는 주성 농인교회는 작년까지만 해도 주성청각 장애인 교회로 불렸습니다.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생각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하나님께 선택된 유대인이든 그 외의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이방인이든, 모두 다를 게 전혀 없는 죄인들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이라든지, 어떤 권력자에게 선택되어 관직을 얻은 사람이든지 간에, 뭔가 다른 사람일 것이라는 차별의식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전문성이라는 점에서 특화된 삶을 살아왔다 할 수 있겠으나, 그 사람의 인성이나 도덕성 그리고 신앙심이 더 고매하다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도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인간은 동일한 하나의 표준이 있는데 죄인이다 는 것입니다. 마치 가슴에 번호표를 붙인 푸른 수의(囚衣)를 입은 죄수들이 똑같아 보이듯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구약의 시편에서 네 구절을(14:1-3, 53:1-3, 5:9, 36:1) 그리고 전도서와(7:20) 이사야서에서 (59:7-8) 한 구절씩을 인용하여, 인간 전체가 죄인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넓고 넓은 천지간에 올바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말입니다. 심지어 선한 일을 하는 사람도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쓸모없는 사람으로 바뀌고 말았다 말씀합니다. 이의를 제기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사람,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인 평가일 뿐 절대적인 평가가 될 순 없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를 하나님을 찾지 않는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를 더욱 실감나게 표현한 구절이 그들의 목구멍을 열린 무덤이며, 그들의 혀는 거짓을 말하고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흐르니, 그들의 입은 저주와 독설로 가득하다.”고 말입니다. 이해관계에 따라서 이합집산을 하는 정치가들은 물론이고, 신앙양심을 줄곧 외쳐대는 종교인들조차도 예외가 아닙니다. 방송에서 질리도록 보았던 표독스러운 얼굴로 험담을 늘어놓던 정치가는 개신교회의 권사님이셨습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서 그 원인이 있었다고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죄인의식을 가지고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시궁창에서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일(회개)이 가능한 단계가 된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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