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756호(2022. 8. 11. 목요일).
시편 시 90:11-14.
찬송 5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 불교문화의 백미로 꼽히는 석굴암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돼,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찬란한 신라 문화의 꽃이라는 불리는 석굴암의 인상과 주변 풍경을 잘 담아낸 곡이 있습니다. 최재호 시 이수인 곡 <석굴암>. 역사의 표정이 담긴 곡이라는 소개도 있습니다. 수려한 노래입니다. 작곡가의 다른 노래인 별이나 옥비녀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화려하고 밝은 노래이지요.
“토함산 잦은 고개 돌아보면 쪽빛 동해 낙락한 장송등걸 다래 넝쿨 휘감기고, 다람쥐 자로 앞질러 발을 멎게 하여라. 한고비 또 한고비 올라서면, 넓은 한계 스러진 신라천년 꿈도 서려 감도는가. 막달아 아늑한 여기 굴이 하나 열렸네. 칡뿌리 영긴 흙을 둘러막은 십육나한, 차가운 이끼 속에 푸른 숨결 들려오고, 연좌에 앉으신 임은 웃음마저 조으셔라.”
아름답고 감성적인 전주뿐만 아니라, 시종 멋있게 흐르는 노랫가락은 석굴암 주변의 풍물들을 지나서 멀리 화려했던 신라천년의 역사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작곡가의 대표 가곡으로 불질 정도로 호소력이 있는 작품이지요? 석굴암을 아름답게 해석한 노래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8월 11일 방송> .
2. “그리스도 안의 새 생활(1-8절)”을 읽었습니다. “바른 예배, 혹은 참된 예배란 어떤 것입니까?”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주일 성수를 내세우는 분들은 십계명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근거를 듭니다. 주일 성수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전제를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일 뿐, 바른 예배나 참 예배와는 다릅니다. 요즘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얼마나 세속화 되었는지는 세상이 다 알고 있는 판국에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사도 바울도 많이 받았던 모양입니다. 사도는 “하나님께서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라.”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예배라고 확인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크리스천의 삶을 예배처럼 살아가라는 뜻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크리스천의 삶이 온통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게 하라는 뜻이라 하겠습니다. 요즘 군인 사역은 물론 학원 사역도 힘들어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명시된 나라에서 누군가에게는 인권 침해 요소가 있는 특정 종교 교육을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럴 날이 오리라 예상했던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의 예표로 가장 비슷한 나라 미국이 그 길을 보여준 때문입니다. 1961년 최초로 천주교 신자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당선된 후 1962년부터 모든 공립학교에서는 기도로 시작하는 수업이 금지되었습니다. 수정헌법 1조에 따라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원칙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원칙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한 지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기독교 신앙이 온실 속에서 보호 내지는 특혜를 받으며 전파되어서는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경쟁력을 가진 신앙이 요구된다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기독교 신앙은 힘든 환경에서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때 우리나라에선 대통령을 비롯 국회의원의 70%이상, 의사의 60% 이상이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전국 복음화 운동이 교회 지도자들 중심으로 일어나고, 심지어 서울특별시장은 서울을 성시화 하겠다는 말을 공언하기도 하였습니다. 온 나라가 기독교 천국이 될 것 같은 기세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당당했던 기세는 30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25%에 육박하던 기독교 인구는 10%대로 떨어졌습니다. 많은 젊은 크리스천들이 교회를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가장 심하게 비난하는 안티 크리스천에 합류한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기독교 신앙이 잘못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이용해서 이득을 보려던 정치가들과 종교 장사꾼들의 야욕이 들통 난 것입니다. 오늘 사도는 이런 우리들을 향해서 준엄하게 권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의 분량대로 잘 관리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예언이든 봉사든 가르치는 일이든 격려하는 일이든 그 분수에 알맞게 활용하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일이란 이득을 챙길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동안 한국 개신교회가 개독교라는 쌍소리를 듣게 된 배경에는 화려한 말만 있을 뿐, 희생적이고 진정성 있는 삶을 보여주지 못한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을 성공의 수단으로 생각한 결과는,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 축재하고 추태를 보이는 결과를 맺은 것입니다. 기독교회가 외면당하는 지금이 크리스천의 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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