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795호(2022. 9. 19. 월요일).
시편 시 99:6-7.
찬송 51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리는 가을밤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에 참 좋은 시간입니다. 적막하고 쓸쓸한 분위기의 가을 밤, 선선한 바람과 차가운 공기가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기 때문일까요? 이태선 시 박태준 곡 <가을 밤> 준비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조용히 따라 부르고 싶은 그러한 곡이지요.
“가을 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 집 뒷산 길, 어두워 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가을밤, 고요한 밤, 잠 안 오는 밤, 기러기 울음소리 높고 낮을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1931년 작곡된 곡입니다. 동요라고 하기에는 너무 애틋한 정서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어른들이 듣는 동요라는 평도 있더군요. 작곡가 박태준선생의 곡 중에는 이처럼 쓸쓸하고 애틋한 느낌이 나는 곡이 많이 있습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호소력 있는 풀어낸 이 곡 역시도 들을수록 감정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잇습니다. 소프라노 신영옥의 노래로 들었는데요. 도입부에 반주 없이 독백 같은 연주가 인상적입니다. 우는 것처럼 부르는 이 부분이 곡의 분위기를 잘 전하고 있고요. 곡을 연습할 때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이 떠올라서 많이 울었다고 하네요. 가을 밤 쓸쓸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노래였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9월 18일 방송>
2. “엘리바스의 충고2(1-11, 17-21, 26-27절)”을 읽었습니다. 남편을 잃은 한 성도에게 사람들이 찾아와 충고라는 것을 해 주더랍니다. 한 사람은 점잖은 장로님으로 인생은 고해와 같으며, 그러다 죽음에 이르는 것이 이치라며 천국에 소망을 두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충고하였고, 다른 한 분은 살아 있는 자식들과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힘을 잃지 말라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교우가 손을 다정히 잡아주면서 얼마나 힘이 드시냐? 이제 잠을 자는 게 좋겠다면서 여기 일들은 내가 다 살필 테니 아무 염려하지 말고 주무시라고 하더랍니다. 그때 자신에게 가장 필요했던 충고는 세 번째 교우였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겪노라면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교차하곤 합니다. 특별히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극심히 아픔과 슬픔을 겪을 때면 주위에서 하는 그 많은 말들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더욱 더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사랑하는 가족을 이별한 사람에게는 더욱 더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힘든 시기에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약해져 가는 육신일지 모릅니다. 이별의 아픔을 주체하지도 못하는 판에 앞으로 살아갈 현실적인 문제들도 엄청난 고통을 안겨줄 것입니다. 이런 때 우리에게 가장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신적이거나 영적이 것 이전에 육신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절망의 나락으로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욥에게 그의 세 친구는 욥의 몸과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엘리바스는 십이분 욥의 처지와 형편을 이해하는 양 생각하며 말을 합니다. 그는 과거 잘 나가던 시절의 욥을 추억하면서 한 마디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지도하고 용기를 주고 힘을 주었던 자네가 어찌하여 이처럼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참 어리석은 주장입니다. 한번 젊은 날은 영원한 젊은 날로 계속되며, 한번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지혜로울 것이라는 망상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나오는 욥의 친구 엘리바스처럼 문제를 진단하는 공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 나아가 전심전력으로 기도하라는 충고입니다(8-11절). 우리가 흔히 들어봤던 얘기 아닙니까? 힘든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기도가 부족한 탓이라고 책망하며 하나님께 맡기라고 강권합니다. 그래서 기도 만능주의가 가장 쉽고 빠른 해답이라고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욥이 겪는 시련에 변화가 없자, 기도에 게으른 탓으로 확정한 것입니다. 두 번째 진단은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라는 충고입니다(17-21절). 고통이 잠을 못 이루게 하고 목마름이 입안을 말라붙게 할 때에도,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묵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의 고통에 아무런 변화가 없자, 욥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미 떠난 사람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세 번째 진단은 하나님 안에 있는 자 곧 영적으로 건강하면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는 충고입니다. 요한삼서 1:2에 대한 해석은, 성경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읽지 않게 만든 슬픈 큰 실수였습니다. 성경의 전체 흐름은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오히려 힘들게 사는 것이라 말씀하는 것을 잊은 것입니다. 성경은 소금과 빛 그리고 십자가를 앞세우는 말씀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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