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14(2022. 10. 8. 토요일).

시편 시 103:18-20.

찬송 7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그 날이라고 이름 부를 만한 날이 있기 마련이겠지요. 어느 시험에 합격한 날일 수도 있고요. 반대로 그 시험에 미끄러진 날이 그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고 돌아서던 날일 수도 있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일에 첫발을 내딛는 날이 그러한 날이 될 수도 있겠지요. 특별이 기억되는 어느 하루. 김성균 작사 작곡 <그 날>에서는, 언젠가 무리진 달빛에 앉아서, 노래 부르던 그 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잊지 못할 자신만의 그날로 돌아가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곡이지요. “언젠가 무리진 달빛에 앉아서 노래 부르던 그 날 잊을 수 없어. 오늘도 그 고운 날을 수첩에 그려본다. 조그만 조각달님이 물가에 숨어서 우리들의 속삭임 엿듣고 있었지. , 언제 또 한 번 가 보았으면, 언젠가 무리진 달빛에 앉아서, 노래 부르던 그날 잊을 수 없어, 오늘도 그 고운 날을 수첩에 그려본다. 떠오르던 뭇별들이 나무위에 서서 그 노래 귀 기우리겠지. , 언제 또 한 번 가 보았으면.” 작곡가 김성균 선생은, 노래를 통해서 어린이들의 가슴에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는 작곡가입니다. <그 날> 역시 가곡이지만 서정적이며 우아한 선율이 약간 동요 풍을 느끼게 하지요. 맑고 단순한 시상에 걸맞은 아름다운 서정과 그 곡의 특징입니다. 이 곡에는 와이에게 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가사 역시 정겹고 아름답지요. 과거의 어느 날을 그리워하고 있는 그 마음이 듣고 있는 사람의 마음까지 잘 전해져 옵니다. 한번 듣고도 금방 좋아질 수 있는 친근한 매력을 넘치는 곡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회상에 빠지게 하는 서정적이고 우아한 선율이 아름다운 곡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108일 방송>

 

2. “야훼께서 욥에게 대답하시다(1-17)”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욥의 독백에서 어쩌면 저렇게까지 당당할 수 있을까 아니꼬운 마음이 들 순 있어도, 우리 자신을 빗댄다면 단 한마디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 비교불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대답이 얼마나 난처하실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차원이 다른 말씀을 꺼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폭풍 속에서 대답하셨다고 전했을 것입니다. 욥의 말들을 부질없는 말이라고 일축한 후에, 땅의 기초를 놓을 때 어디에 있었으며, 누가 이 땅을 설계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누가 줄을 그었고 금을 그었으며, 어디에 땅을 받치는 기둥이 박혀 있느냐 시며 세상의 주춧돌은 누가 놓았느냐고 물으십니다. 과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런 하나님의 물음들이 엉터리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를 포함해서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서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은, 멀리 달아나려는 원심력과 서로 잡아당기는 만유인력이 지구와 달 사이에서 맞서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질문을 현대적으로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는데도 부딪히지 않고 여전히 제 길을 가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욥에게 하신 하나님의 대답이 심오한 질문으로 돌아왔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께 던졌던 수많은 물음들에 대한 대답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직도 너희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부질없는 말들만 늘어놓는 게 아니냐고 말입니다.

   아이들이 어린애 적일 때, “아빠,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차도 사주고 집도 사줄게.” 제 아들 녀석이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철부지 말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참 한심한 부모 아닙니까? 그때 아버지 형편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아들의 청구서도 기억합니다. 청구서. 일금 800. 노트 2, 연필 2자루, 떡볶이 3회 등이 그 명세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맨 밑에 이렇게 추신을 써 두었습니다. 아버지, 형편이 되시면 주시고, 형편이 안 되시면 나중에 주셔도 됩니다. 그 청구서를 받고 가난한 목사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을까 염려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 청구서를 낸 아들이 차를 사고 집을 사 준다했으니, 말이 안 되는 얘기가 아닙니까? 아직 차를 사 주지는 않았지만, 집을 사는 데는 크게 도움을 주었고, 제 엄마에게도 넉넉하게 생활비를 건네고 있으니 다행히 부질없는 말로 끝난 건 아니었습니다. 피조물이 자신을 만드신 조물주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으며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를 깨우치려는 야훼 하나님의 답변 같은 물음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답답한(?) 모습을 익히 경험한 선각자들은, 조용히 기다리는 자세를 취하셨던 것입니다. 기다림, 그것은 신앙생활에 연륜을 더해주는 묘약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들 인간이 배워야 할 하나님의 사랑을 시작하던 바울 사도는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깨우침을 첫 마디로 옮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도 기다림으로 시작하자고, 기다림의 절기(대림절)을 맨 앞에 우뚝 세웠던 것인지 모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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