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047호(2023. 5. 29. 월요일).
시편 시 141:7-10.
찬송 24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랜만에 둘러보니 서점도 많이 변했더군요. 예전에는 문학 서적이 있던 서가가 성공이니 부자 되는 실용서 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시집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길목에서 벗어난 저 뒷자리로 물러나 잇고 말이지요. 아마도 누군가가 요즘 시를 읽거나 암송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낭만적이라는 칭찬 끝에 조금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말이 덧붙기 마련일 겁니다. 하지만 시인 신경림은 현대에서 시를 읽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행복 하나를 더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일이라고 말이지요.
“길을 가다가 눈발 치는 산길을 가다가, 눈 속에 묻힌 새빨간 열매를 본다. 잃어버린 옛 얘기를 듣는다. 어릴 적 멀리 날아가 버린 노래를 듣는다. 길을 가다가, 산길을 가다가. 산길 강길, 들길을 가다가. 내 손에 가득 들린 빨간 열매를 본다. 내 가슴속에서 퍼덕이는 하얀 새. 그 날개 소리를 듣는다. 그것들과 어우러진 노랫소리를 듣는다. 길을 가다가, 길을 가다가. 길을 가다가 갈대 서버기는 강 길을 가다가. 빈 가지에 앉아 우는 하얀 새를 본다. 헤어진 옛 친구를 본다. 친구와 함께 잊혀진 꿈을 찾는다. 길을 가다가. 산길을 가다가. 산길 밤길 들 길을 가다가. 내 손에 가득 들린 빨간 열매를 본다. 내 가슴 속에서 퍼덕이는 하얀 새 그 날개 소리를 듣는다. 그것들과 어우러진 노랫소리를 듣는다. 길을 가다가. 길을 가다가.”
시인 신경림은 자신을 일컬어 생이라는 배에서 흔들리는 건달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신경림의 시는 그의 말처럼 소박하지만 인간으로 살아가는 현기와 사람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담겨 있습니다. 취중에 시를 쓰는 것은 자제하고 가장 정신이 맑은 새벽에만 시를 쓴다 할 정도로 시를 대하는 태도가 경건했지요. 하지만 시를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어떤 착상이 떠오르면 메모를 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계속 굴리고, 그러다가 거의 암송할 정도가 되면, 거의 일필휘지로 시를 써 내려갔다고 하지요. 시를 써야 하겠다고 작정한 후에는, 설레서 잠이 오지 않았다는 한 인터뷰를 통해서, 시인 신경림의 시에 대한 강한 애정을 알 수가 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5월 28일 방송>
2. “인사(1-2절)”과 “감사와 격려(4-14절)”을 읽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사랑하는 제자이며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보낸 두 편의 서신은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었던 디모데는 물론 오늘의 목회자와 그 지망생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디모데 전 후서와 디도서를 목회서신으로 분류합니다. 이 두 인물은 바울의 제자이며 동역자들로 바울이 개척했던 교회들을 돌보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가르치고 본을 보여준 제자들이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기를 희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현장에서 직면하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질문과 하소연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런 저런 일들과 관련하여서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의견과 당부를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가령, 디모데가 목회하던 1세기 소아시아 지방에서는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사상들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교회에 합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거짓 지도자들이 일으키는 문제들로, 크게 두 종류의 문제를 퍼트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영지주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의 강한 주장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는 사회든 교회든 지도자들이 바르게 중심을 잡고 있느냐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사회지도자들에게서는 윤리적인 바탕이 튼실해야 한다는 점이고,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윤리와 함께 건강한 신앙이 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선 진리나 비진리냐를 가늠하기 전에 도덕적인 수준을 먼저 주목한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우리나라에 기독교회가 전파되었을 때, 공자의 도덕관을 강조한 것이 유효했던 것입니다. 제가 50년대와 60년도 설교집을 살펴보니까 대부분의 유명 설교자들은 공자님의 가르침을 마치 기독교회의 진리인양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회 지식층은 물론 일반인들도 기독교회에 안심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한국에 기독신앙을 전파한 이들이 청교도 신앙을 가진 분들로, 교육과 의료 복지 등에 관심을 갖고 복음을 전했던 것은 큰 영향력이 되었습니다. 사도는 디모데의 신앙의 바탕을 강조하는데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신앙을 물려받았다고 말입니다. 거짓 없는 마음과 비겁하지 않은 마음 그리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 태도를 강조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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