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048(2023. 5. 30. 화요일).

시편 시 142:1-4.

찬송 49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박재삼은 생전에 슬픔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시인이었습니다. “꽃 잎 속에 새 꽃잎 겹쳐 피듯이, 눈물 속에 새로 또 눈물 나던 것이네.” 라든, 그의 시구 절처럼 박재삼의 시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촉촉하게 젖게 하는 애상의 힘이 있습니다. 그의 시에는 눈물과 울음, 강과 산과 바다로 연결되는 물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동시에 햇볕과 불같은 시어를 공통적으로 사용해서, 불의 이미지 역시 부각시키면서 말이지요. 슬픔과 생의 무상을 담은 물의 이미지와, 삶의 소진과 소멸을 담은 불의 이미지는,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한 빛 황토제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어라. 몸으로 사내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 불이 지지지, 지지지 않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만 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춰 주리라. 가다간 불에도 대어 눈물 적셔 주리라.”

    박재삼의 시는 전통적인 우리말의 가락이 잘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막 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생선 장사를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집이 어려워서 낮에는 중학교 급사로 일하고 밤에는 야간 반에서 수학을 했지요. 집 형편이 옹색해 책을 살 수 없었던 탓에, 가람 시조집을 빌려다가 공책에 베껴 쓰고 늘 외웠다고 합니다. 그가 우리 전통 시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지요. 그의 시 세계를 운운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의 정서 역시도, 바로 이러한 성장과정 때문이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530일 방송>

 

2. “감사와 격려2(15-18)”그리스도 예수의 충성스러운 군인(2:1-13)”을 읽었습니다. 바울 사도의 서신에서는 가끔 사도와 동역하였던 인물들 중에서는 끝까지 좋은 우정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1차 선교 여행에서 무단이탈을 했던 마가를 사이에 두고, 2차 선교 여행에서는 동행할지 말지를 두고 의견의 차이가 있던 사도와 아볼로가 헤어지게 된 얘기가 있는가하면, 오늘 본문에서처럼 부겔로와 허모게네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여러 명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연유에서 그리되었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친하고 가까운 친구 사이라고 해도, 장시간 여행을 함께 하다가 보면 의견의 차이로 다투기도 하고, 마침내 따로 따로 여행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저의 첫 번째 성지 순례에서 마음에 맞는 선배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런데 로마에서 단 3일간 함께 여행하면서 하루도 의견의 일치를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숙소에서 출발은 같이 하지만 방향은 전혀 다른 곳을 향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순례의 목적이 달랐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보로에 대해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감옥에 갇혔던 것을 비난하거나 숨기려는 다른 제자들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단락은 흥미롭게도 우리 기독교인을 군인과 운동선수에 비유한 말씀입니다. 우리 묵상식구 중에는 두 분의 구세군 사관이 계신데, 한 분은 은퇴를 하셨고 다른 한 분은 현역으로 계십니다. 여러 차례 구세군 사관님들과 교제를 가졌는데, 특히 서해 지방 사령관의 요청으로 영내 사관 세미나도 가지고 친교할 기회를 가졌는데, 우선 그분들의 제복에서 정신이 번쩍 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군인이란 오직 나라와 민족의 방패가 되어 가장 아름다운 젊음의 한 때를 바치는 가장 순수하고 자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절제된 생활과 확고부동한 언행에서 우리들 크리스천이 본받을 모델이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또한 사도는 우리 크리스천을 운동선수에 비유하면서,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목표를 가진 존재를 배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크리스천 뿐 아니라, 모든 삶은 복잡하게 얽힌 것보다는 단순한 삶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생각합니다. 그래야 삶의 의미와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 수 있으니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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