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7(2000.12.24, 주님의 날)
성경말씀 : 벧전 2:11-12.
찬송 : 217장.
제목 : 육체의 정욕과 싸워야 합니다.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2. 오래된 유행가 가사에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방인]의 작가 까뮤는, 인간은 이 세상에서 낯선 존재라고 얘기합니다. 많은 부분에서 동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과 친해질 수 없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태어나는 것에서 죽는 모습을 볼 때, 이 세상이 우리들이 정들이고 정붙일 곳이 못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다른 대안이 없다는데 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얼마나 큰 위안과 용기를 주는지 모릅니다.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는 말씀 중에는, 나그네 생활의 문제점과 그 해답을 동시에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나그네 인생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육신의 정과 욕망을 제어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인격적인 사람이란 마음속에 지고 지순한 생각을 가득 채우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온갖 더러운 욕망과 추한 생각이 마음속에 가득차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잘 절제하고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붙들고 있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말씀 말입니다. 신앙의 사람이 다른 사람과 어떤 면에서는 다를 바 없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악한 생각이나 욕망이 신앙의 사람의 마음속에서도 항상 꿈틀거리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은 그런 것들이 자신을 지배하지 않도록, 성령의 도움으로 붙잡고 있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나그네 인생으로 우리들이 항상 싸워야 할 것은, 영혼을 거슬리는 육체의 정욕과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하는 나그네의 투쟁의 실체인 것입니다. “영혼을 거슬리는”, “육체의 정욕”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육체의 정욕이 영혼을 거슬린다고 말하지 않는다는데 주목하셔야 합니다. 오히려 “어떤 육체의 정욕은 영혼을 거스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해야 옳다는 말입니다. 흔히들 육체의 정욕을 인간 중심적인 욕망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인간 중심적인 욕망은 문자 그대로 이기적인데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욕망은 하나님도 이웃도 안중에 둘 리 없습니다. 곧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이기적인 수렁에 서 허우적거리는 경우입니다. 이에 반해서 영혼을 거슬리지 않는 일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나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마음이나 일은 항상 이기심의 반대쪽에 서 있게 마련입니다. 

4. 여러 해 전에 우리 교단 선교사님 가운데 한 분이 두 명의 한국 아이를 입양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잘 생기고 건강한 아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데려가려고 하지 않는 병들고 썩 잘 생기지 않은 아이를 일부러 택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자비를 들여 여러 차례 미국을 오가며 치료를 해야 했고, 다른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른바 천사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며, 천성적으로 타고난 성품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분은 아마도 여러 차례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후회도 하였을 것이고, 이것이 참 사랑일까 하고 회의도 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누구 하나 그에게 상을 주거나 칭찬해 주는 사람도 없는 일을 자청했다는 것이 어리석게 생각되기도 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때로는 억지로 이런 사랑을 실천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선이라고 혹시 생각 드십니까?  속마음과 다르게 겉으로 사랑을 흉내내는 것일 때도 있었기에 말입니다. 옳은 관찰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위대한 싸움이 있습니다. 분명하고 아름다운 삶은, 우리들 사람의 의지나 생각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 세계의 삶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인간의 욕망이나 자연스런 생각은 자기 중심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시인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거슬리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런 자기 중심적인 욕망과 투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5. 지금 우리들 안에 이와 같은 투쟁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음으로 원하는 것과 육신이 즐겨하는 것 사이에 갈등이 있는지를 찾아보자는 말입니다. 만일 이런 종류의 갈등이 여러분에게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마음으로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육신이 즐겨하는 것을 따라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지금은 만족스럽게 살고 있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울 사도는 진심으로 고백하기를, “내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분명히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도우시는 분은 자신의 의지나 용기가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동안 여러분은 크건 작건 선한 일, 주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 에 참여하신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작은 소자 하나를 섬기는 일이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 마음에 선한 생각이 들어왔다고 해서 그를 섬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생각을 떼밀어내려는 생각이 반대편에서 줄기차게 여러분을 압박해 들어왔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피나는 싸움을 해야 했고, 많은 시련을 통과한 후에야 그런 귀한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느 한번도 육신의 정욕과의 한 판 이상의 싸움이 없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에게 이런 선한 싸움이 필요합니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순리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육신의 정욕,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싸워서 이겨야 여러분은 값진 삶을 시작할 수 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6. 우리에게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내 안에 있는 악마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주님께 손을 내밉시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손을 반드시 붙잡아 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오늘은 대림절 넷째 주일이며, 성탄 이브가 있는 주일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새롭게 느끼며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풍성한 성탄절을 맞게 되시길 기도 드립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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