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263.

시편 시 37:25-28.

찬송 37, 101, 40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네/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져/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 이제 내가 되었네미국의 시인 메이 사트의 시 <, 이제 내가 되었네> 라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지요. 유난히 많은 일들이 있었던 2008년 오늘과 내일 이틀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라도 온전한 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는 그런 시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81230일 방송>

 

2. 오늘은 성탄 후 첫째 주일로 구약 이사야 61:10-62:3을 본문으로 시온에 붙여진 새 이름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시온산은 예루살렘에 위치한 두 개의 산봉우리(모리아와 시온) 가운데 하나로, 훗날 다윗성이 터를 잡은 곳으로 요새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시온은 다윗을 연상하게 되고, 다윗을 계승할 새로운 나라에 대한 꿈을 꾸게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온에 붙여진 새 이름이란 무엇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예언자 이사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사명으로 들떠 있었습니다(61:10).

오늘은 2023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입니다. 금년 한 해는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로 정리할 수 있습니까? 벅찬 가슴으로 시작했을 텐데, 과연 그 결산은 뿌듯하십니까, 아니면 허깨비처럼 가볍습니까? 그렇게 결산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사노라면 기쁜 일도 보람된 일도 그리고 자랑스러운 일들도 있었을 것이고, 부끄럽고 어리석고 바보 같은 일들도 떠오를 것입니다. 그렇게 말할 기준은 얼마나 진실 되게 하나님을 생각하였느냐로 가늠할 수 있다 말씀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만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생을 향하신 사랑이 넘치고 넘쳤다는 의미입니다. 구원의 빛나는 옷을 입혀 주셨고, 정의가 펄럭이는 겉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신랑처럼 빛나는 관을 씌워주셨고, 신부처럼 패물을 달아주셨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말은, 개인적이든 민족적이든 인류를 향한 것이든, 하나님의 은총이 차고 넘쳤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찬양이 넘쳐흐르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61:11).

야훼 하나님을 생각하게 될 때 그 가슴에 솟아나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넘쳐흐르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묘사하기를 땅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과 같고, 동산에 뿌린 씨가 움트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깨우치는 많은 것들 중에는, 생명의 신비와 기적입니다. 햐얀 눈 속에서 복수초 꽃봉오리가 솟아날 때, 그리고 꽁꽁 얼어붙은 죽음의 땅에서 마늘 싹이 얼굴을 내밀 때, 그 기쁨과 감격은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하나님은 이 같은 생명의 신비와 기적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찬란한 세상 한복판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기뻐할 줄도 감사할 줄도 모르고, 언제나 현실에 대한 원망과 불평은 물론, 미래에 대해서도 불안과 두려움을 가득 안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세상에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고통을 이겨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땅에서 새싹을 돋우시고, 동산에 뿌린 씨를 움트게 하시는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온에게 새 이름을 주시겠다 약속하십니다(62:1-4).

일제 강점기에 우리는 성과 이름을 다 빼앗길 뻔 하였습니다. 약소민족의 아픔을 겪은 것입니다. 그런데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지금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일본 초중고등 학교 학생들이 자신의 가슴에 한국어로 쓴 명찰을 붙이고 다니는 현실입니다. 이런 통쾌한 복수가 있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시온과 예루살렘에 새 이름을 주시겠다 하시는데, 어떤 이름입니까? “헵시바라 하시는데, 사랑하는 나의 임이란 뜻이고, “쁄라라고 하는데, 나의 여인이란 뜻입니다. 그동안 그들은 포로 생활을 하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소박데기버림받은 여자라는 이름이 이렇게 바뀐 것입니다. 더 이상 조롱을 받거나 천덕꾸러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사랑 가득한 눈으로 나의 임, 나의 여인이라고 부르신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 자신도 스스로를 업신여겼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천사도 부러워하는 이름, 세상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귀한 하나님의 임으로 하나님의 여인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3. 저는 오늘 왕십리 루터교회에서 설교를 합니다. 묵상읽기를 힘들어하는 분들에겐 내년엔 배달하지 않겠습니다. 혹시 폰으로 읽는 분들은 착오가 생길 수 있으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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