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249호.
시편 시 35:23-25.
찬송 9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위선적이라는 말, 선하지 않으면서 선한 척 꾸민다는 그 표현 자체는 늘 부정적인데요. 하지만 억지로 또는 정 반대의 마음을 품고 선한 척 하는 것 하고, 좀 더 착해지려고 노력하고 연습하는 것은 아주 다르겠지요. 겉으로는 차이가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 마음의 뿌리는 전혀 다를 겁니다. 비록 겨울 한 계절 동안이라도 좀 더 나누려고 노력하고, 더 따뜻한 마음을 품고자 노력하는 것도 모두 좀 더 선하고 싶다는 바람의 표현일 텐데요. 그렇게 의식적으로라도 노력을 계속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좀 더 마음에 드는 내 자신으로 변해 있기도 하겠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12월 17일 방송>
2. 대림절 셋째 주일의 복음서 요 1:6-8, 19-28의 말씀을 가지고, “나는 누구일까?” 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당시 지도층인 대제사장, 레위 지파 장로들, 바리새파 사람들에게서 질문을 받았는데, “너는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는 것이었습니다. 철학적인 질문이면서 동시에 신앙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일까요?
요단강변에서는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매우 낯선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6-8절).
엊그제 대학 동창 모임에서 25년만에 나타난, 친구가 필립핀과 미국에서 활동했다는 자기 소개를 하였는데, 모두가 놀랐습니다. 우리 교포들을 대표해서 많은 큰 일들을 해왔다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바탕에는 국내에서 가나안 농군학교와 홀트 아동복지회에서 쌓은 스펙이 작용했던 것 같았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기를 소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요단강변에 나타난 요한이라는 사람은 그의 부모 등 알려고만 하면 알만한 인물이었는데, 그에 대한 요한복음서 기자의 말은 매우 낯설기만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는 것이나, 하나님의 빛을 증언하러 왔다거나, 사람들이 자기 증언을 듣고 믿게 하려고 한다는 것 등이 수상쩍기만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은 빛이 아니라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 빛이라고 하는 등 아리송한 말이었습니다. 흔히 우리는 이런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곤 합니다.
궁금증을 참지못하는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끈질기게 그의 정체를 캐물었습니다(19-25절).
우리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질문하기를 멈춰버렸습니다. 매우 슬픈 일입니다. 질문받기를 좋아하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도 학생은 배운 범위에서만 질문해야 합니다. 제게 칼빈의 예정론을 자세히 설명해달라는 질문이나, 웨슬리의 성결의 복음을 이해시켜달라고 질문을 받는다면, 저는 장로교 신학자나 감리교 신학자에게 떠다넘길 것입니다. 제 분야가 아니라고 말하면 넘겨주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질문을 품고 사는 것은 매우 귀하고 값진 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에게 던져진 질문들은 “당신이 그리스도요?” 라는 것부터 “엘리야요?”, 그런 다음에 “그러면 당신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심각한 질문에서 가장 평범한 질문으로 퇴보한 것입니다. 심각하다함은 종교재판에까지 올라갈 문제라는 것이며, 평범하다함은 누구나 자신이 누구일까를 반드시 물어야 하는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은 물세례를 베푸는 사람에 불과하다 대답합니다(26-28절).
세례자 요한이 살던 시대에는 요단 강변은 물론 사해 지역의 척박한 곳에 사는 쿰란 공동체와 에세네 파는 세례를 입회(入會)의식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공동식사, 세례식, 리더쉽의 구조, 회원권 취득 그리고 재산 공유, 이 다섯 항목을 공유(共有)했는데,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나 엘리야 그리고 그에 준하는 예언자로 생각했던 질문자들은 헛웃음이 나왔을 것입니다. 변방을 떠도는 일개 수도사를 과대평가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反轉)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자 요한을 비롯해서 누구든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나는 물세례를 베푸는 자일 뿐, 내 뒤에 오시는 분의 신발끈을 풀기에도 벅찬” 사람이라 대답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들 역시 자신을 빵을 굽는 사람이라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자신의 소명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해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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