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281호(2024. 1. 18. 목요일).
시편 시 40:4-6.
찬송 33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티베트에 사는 사람들은 <마시트프>란 부적을 지니고 다닙니다. 이 부적에는 쇠사슬 만들어진 족쇄를 찬 크고 사나운 개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요. 티베트 사람들은 힘세고 사나운 개 <마스티프>가 험준한 지역까지 불운과 악한 기운을 쫓아준다고 믿었습니다. 산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소리로 <마스티프>가 짖으면, 그 어떠한 것이라도 놀라서 도망 갈 거라는 믿음이었지요. 그 믿음이 참 순박하고 정겹습니다. 탐욕이 느껴지지 않는 소박한 마음, 그 마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믿음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티베트 사람들이 의지했다는 사나운 개 <마스티프>의 부적이야기는 왠지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전통을 이으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구촌 어느 곳에서라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 가운데 하나지요. 우리 조상들이 마을이나 건물 입구에, 장승이나 해태 상을 세웠던 것과도 비슷합니다. 집의 입구와 부엌, 장맛을 들이는 장독대 항아리 안까지 어느 곳 하나 방심하지 않고, 조상들은 우리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습니다. 이 땅 위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도, 모두 누군가의 축원이 깃들어져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해지지요. 그 오랜 축원이 더 많은 사람들을 복되고 행복하게 만들기를 바랍니다.
복을 기원하고 안녕을 비는 것이, 혼자만을 위하는 일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가 불행하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 축원을 할 만큼 여유는 없겠지요. 하지만 모두가 불행한 가운데서는, 혼자 누릴 수 있는 행복도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것의 참 의미는, 요즘 같은 때 더 깊이 가슴에 새겨 지는 것 같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년 1월 18일 방송>
2. “예수와 사마리아 여자(1-15절)”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가신 일은 당시로써는 가십거리가 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점잖은 유대인이라면, 그것도 지도자급에 해당되는 사람이라면 신중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수르에 멸망한 북왕국 이스라엘은 정복자들과의 결혼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결국 유대인의 선민의식은 물론 정체성이 무너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왕국 유대인들은 북왕국인들 특히 사마리아인들과는 상종/相從도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마치 이방인처럼 간주/看做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사마리아 방문은 주목하는 것은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구설수에 오르기에 딱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경건한 유대인들에게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물 주변에 모여 동네 가십을 즐기는 여자들과 어울릴 수 없는 평판이 좋지 못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여인에게 주님께서 먼저 다가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외간 여자에게 물 한 그릇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파격적이니 행보였습니다.
야곱의 우물은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사마리아에 위치하고 있을지라도 야곱의 우물임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창 33:19에 의하면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은 일백 개로 구입하였는데, 훗날 아모리 족속에게 이 지역을 빼앗겼습니다(창 48:22). 흥미로운 것은 유대인 청년 예수와 사마리아인 이혼녀 사이의 대화치고는 의외의 주제들이 취급되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첫 대화는 매우 일상적인 것으로, 물 한 잔을 요구한 것과 서로 상대에 대한 불편한 관계를 확인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대화는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집니다. 그 포문은 사마리아 여인이 열었습니다. 어떻게 유대인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하고 하느냐는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선문답 같은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물을 달라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았다면, 그녀가 먼저 샘솟는 물(개역성경은 생수)을 구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그 여인이 간절하게 구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녀의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음을 꿰뚫어 보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한 걸음 다가서며 그 샘솟는 물을 긷기에는 이 우물이 깊고, 당신은 두레박도 없을 뿐 아니라, 야곱이래로 자자손손 이 우물을 사람과 짐승들이 마셔왔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이시냐고 정곡을 찌릅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하고 싶은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이 우물물은 목마름을 가시게 할 수 없지만,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원히 살게 하는 물이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에게 그 물을 주시라고 간청하기에 이릅니다. 야곱의 우물 가에서 만난 여인은 물론, 어쩌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타는 목마름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배고픔이나 질병으로부터 자유 하고픈 목마름을 시작으로 영원한 삶에 대한 갈증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 해답은 무엇이겠습니까? 니고데모가 찾았던 것이며, 우물가의 여인이 사모하는 것으로, 영원을 살게 하는 진리, 곧 삶의 의미와 목적인 구원에 이르게 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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