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284.

시편 시 40:10-12.

찬송 37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정 의성 시인의 <시를 찾아서> 라는 시를 보면, “지금까지 시를 써오면서 시가 무엇인지, 시로써 무엇을 이룰지 깊이 생각할 볼 틈도 가지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다.” 이런 대목이 있는데요. 시인의 이런 은밀한 고백은, 어쩌면 우리들 모두의 고백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지요. 우리가 해 온 일의 의미를 밝히는 작업은, 결국 우리에게 남은 맨 마지막 숙제 같은 것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9120일 방송>

 

2. 주현절 후 셋째 주일의 사도서간 고전 7:29-31을 본문으로 세속적인 것들과의 이별 연습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남아 있는 삶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정리하려고 할까요? 사도는 종말을 목전에 둔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충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속적인 가치들과 이별 연습을 하라고 말입니다.

 

성경은 임박한 종말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13:5-37, 24:4-36, 21:8-36).

종말관이란 세상 끝날에 관한 말씀인데, 누구도 알지 못하는 때에 갑작스럽게 종말이 올 것이라며, 그래서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임박한 종말관 외에도 실현된 종말관과 미래적 종말관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의 바탕에는 우리의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제한된 짧은 삶이라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원한 삶이 따로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을 영원한 것인 양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오히려 영원한 삶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순간을 위해서 힘쓰기 보다는 영원을 위해서 힘쓰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후회나 미련 없이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임박한 종말관을 가지고 살라고 말입니다.

 

성경은 첫째로 인간관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십니다(29, 12:18-25).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생과 내생을 불연속이 아니라 연속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맺었던 모든 관계가 천국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연속성에 대해서 부정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인 수혼법/受婚法 때문에 그렇게 주장한 것입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첫 형을 위해 형수를 아내로 맞이할 가능성 때문에, 천국에 가서 일곱 형제가 그 형수의 남편이 누가 되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가 썩 좋지 않을 경우, 두 번 다시 엮이고 싶지 않다는 점입니다. 다행히(?) 주님께서는 천국에서는 이 세상에서의 관계가 있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천국에서 옛 부부나 형제 그리고 친구를 찾을 일도 만날 일도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둘째로 세상일과의 과감한 정리와 결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30-31, 12:26-27).

사후 세계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 한국 개신교회의 일부 부흥사들이 잘못 가르쳐 온 큰 문제입니다. 성경 주석의 대가들이며 종교개혁자들인 루터나 칼뱅은 누구도 요한 계시록을 주석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당시에만 해도 900여개의 요한 계시록 주석서가 나와 있었는데, 900여 가지의 이론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고 합니다. 제 멋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계시록인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보다는 생전에 힘쓸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자고 말입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일들을 멋있게 정리하며 이별 연습을 하라고 말입니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루터가 하숙했다고 알려진 독일 아이제나흐의 Cotta 가족의 집 앞 돌비석에 새겨진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고 해도, 오늘 심기로 한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말을 한 Martin Luther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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