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24.

시편 시 68:30-32.

찬송 41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변의 시인들을 보면, 어딘가 조용하고 단아하며 속이 깊은 그런 모습이다.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생전에 단 두 편의 시를 남긴 분으로, 자신의 실연사건과 부친의 성격 때문에 평생을 은둔 시인으로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한 가슴의 깨어짐을 막을 수만 있다면 이란 시는 항상 내 가슴에 남아, 내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지키게 해 주었다. 우리의 삶을 자랑스럽게 내놓을 게 없어보여도, 그래도 결코 헛되지 않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니 말입니다.

    ‘제가 만일 한 가슴의 깨어짐을 막을 수 있다면, 저의 삶은 헛되지 않아요. 제가 만일 한 생명의 아픔을 덜어주고, 고통 하나를 식혀줄 수 있다면, 그리고 또한 힘이 다해가는 로빈새 한 마리를 그 둥지에 다시 올려 줄 수만 있어도, 저의 삶은 진정 헛되지 않아요.’                                        이봉국 역, 영원한 세계의 명시, p.35. 박성완, 24. 6. 7.

 

2.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셋째 주일로, 구약 창 3:8-15을 본문으로 왜 그랬을까?” 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1974년에 나온 노래 제목이 왜 그랬을까?”였습니다. 머리로는 뻔히 알면서도 삶에서는 전혀 딴 판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책망하는 노래입니다.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 왜 그랬을까? 대중가수 펄시스터스가 부른 노래였습니다.

 

인간을 찾고 계시는 하나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8-9).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말하는 천국은 에덴동산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국을 오해하곤 합니다.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는 곳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에덴동산은 온갖 좋은 것들로 가득 찬 곳임에 분명합니다. 문제는 그 좋은 것들과 좋은 삶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어느 석양 산들바람이 불 때,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거닐고 계셨다 했습니다. 그러자 아담과 하와는 울창한 숲 속으로 숨어들었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셨던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거주하는 삶의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거처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는 만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담과 하와가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찾으셨던 것입니다.

 

알몸이 되어 부끄러움을 깨닫고 하나님을 피했던 것입니다(10-11).

인간이 최초로 깨달은 것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198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달간 강의를 들으러 가는 길에 스위스 제네바에는 레만 호수에 들렸습니다. 무려 145m나 뿜는 분수가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장면이어서 호기심을 가졌는데, 어떤 분이 그쪽으로 잘못 가면 나체 해수욕장이 나오니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나체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며 이를 지지하는 히피족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성경말씀과는 완전히 정반대 이론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한쪽은 자연스러움으로, 다른 쪽은 부끄러움으로 말입니다. 자연스러움으로 출발한 것이 맞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할 때 죄가 들어오고, 그때 자연스러움이 부끄러움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복해야 할 낙원에 죄가 들어왔고 그래서 부끄러움의 동산으로 뒤바뀐 것입니다. 불순종은 기쁨을 슬픔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12-15).

우리들의 선조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자녀가 부모에게 불순종을 하는 것은 그리 큰 잘못이 아닐 수 있습니다. 늘 하는 짓이니 말입니다. 무릎 꿇고 간절히 빌면 용서받을 수 있고, 더 큰 사랑을 받을 기회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바보짓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들은 핑계대기를 했습니다. 아담은 그의 아내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핑계를 댔던 것입니다. 핑계대기란 무엇입니까? 핑계란 자기 자신이 지은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떠다 넘기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내 잘못은 없어! 라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매우 악한 행위입니다. 죄를 인정하는 것보다는 핑계를 대는 게 쉽다 생각한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쉬운 길을 걷고 이들이 많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더라면, 그래도 하나님께서 벌을 주셨을까?

 

3. 저의 항암치료가 3차례의 연기를 거쳐 오는 12일 가능하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전공의들의 심정도 이해를 할 수 있으나, 환자들이 정치싸움에 희생양이 되는 것은 잘못 같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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