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41호(2024. 10. 4. 금요일).
시편 86:1-3.
찬송 54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 예수가 우리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하시려고 오신 구세주이신가? 이 물음은 지난 2천년동안 계속 진행되고 있는 물음이다. 사람들은 주관적이 아닌 객관적인 증명이나 설명을 요구하고 있는 때문이다. 그러나 신앙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랑의 문제도 객관적인 증명자료는 얻을 수 없다. 제삼자에게는 여전히 어리석게만 생각되는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신앙을 하나님의 선물(은혜)라고 가르친다. 그 선물은 한 두 시간 안에 모두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성령에 감동되기까지는 언제나 낯선 선물로 남겨져 있을 뿐이다. 박성완, 2024. 10. 3. 청계천 명상에서.
2.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란(21-41절)”을 읽었습니다. 수년 전 몽골에서 교회 지도자 세미나가 있어서 방문하게 되었는데, 교회당에서 바라보는 앞 산 밑에는 벽돌 울타리를 네 모 반듯하게 둘러쳐진 그 한 복판에 나무 몇 개를 엇갈리게 세워두고 천을 씌운 간이식 몽골 천막이 두어 개 보였습니다.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서 강의가 없는 시간을 틈타서 현장을 내려가 보았는데, 여기 저기 불을 피운 흔적이 있고, 각종 동물들의 두개골이며 큰 뼈들이 뒹굴고 있었습니다.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지만 확실하게 이해하고 싶어서 물었습니다. 이것은 몽골의 유명한 몇 점쟁이들이 방문해서 점을 치고 제사를 드리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이 산당(?)은 그 외형을 간직하고 있어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이틀 전 이곳에서 불교도들과 심각한 싸움이 있었던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한국인 강사가 와서 우상의 제단을 헐어버리고 부셔버려야 이 마을에 하나님의 축복이 온다고 가르쳤던 모양입니다. 이를 문자 그대로 알아들은 한 청년이 그 길로 불교 사원으로 가서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러버린 것입니다. 그때부터 불교도들로부터 심각한 탄압을 받게 되었다는 얘기였습니다. 우리는 우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습니다만, 제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웬만한 집 부엌에는 삼신/三神 할머니께 올리던 정한수를 담던 물그릇과 작은 상/床이 있었습니다. 그때에도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가르쳤지만, 삼신할머니께 바치던 물그릇과 상을 부숴 없애라고 충동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랬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보다 한술 더 떠서 소위 땅 밟기라는 해괴한 주장을 하고 실행하게 하는 전도단체들이 있어서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에베소의 유명한 여신 아데미 상(다산/多産을 상징하는 유방을 여럿 가진 은으로 만든 신상)를 가르치고 그 신상의 모형을 만들어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조직을 가지고 있었고, 에베소의 큰 소득원으로 아데미 신상을 제작하고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느 날 바울 사도의 설교를 분석하면서 문제제기를 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다.” 는 것이 그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된 것입니다. 만일 이들의 종교가 흥해지게 되면 자신들의 아데미 상은 팔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동역자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서 군중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장 그들을 요절할 기세로 말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들을 따라 극장으로 가려고 하자 성도들이 말린 것입니다. 천만 다행히게도 아시아의 지방장관들도 바울을 만류하였고 더욱 다행인 것은 에페소의 시장이 앞에 나서서 성난 군중들을 진정시킨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고소할 만한 일도 없으며, 도리어 소요죄로 법에 저촉될 수 있다며 합리적으로 대화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에베소의 소요는 진정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꾼들을 도울 사람들을 준비시켰던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 간의 갈등을 조장한 전도행위에 대해서 심각한 반성을 해야 합니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온 후에 기성 종교들, 가령 불교나 유교 그리고 재래종교로부터 무서운 공격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선교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어주는 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빌립보 감옥의 간수들처럼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가족 모두를 주님 앞으로 인도했던 선례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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