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54(2025. 5. 5. 월요일).

시편 119:10-12.

찬송 18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죽어 나무 밑동에 묻힌 앵무새가 환영/幻影처럼 등장하는 대목에선 우리 삶이란 육신이 죽어 묻힌 다해도 다시 또 다른 생명으로 우리들의 삶 속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비롭다 생각한다. 늘 흰 모시 적삼과 치마를 즐겨 입으셨던 할머니가 주일 이른 새벽에 목욕재계를 하시고 주일 예배당에 엎드리시는 장면은 너무도 또렷하게 재생되니 말이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pp.184-185를 읽으며 얻은 상념이다.

 

2. “하나님 앞에서의 확신(19-24)”성령과 악령(1-6)”을 읽었습니다. 1996-2015년까지 만 20년 동안 저는 주일 공예배에서 어린이를 위한 설교와 성인을 위한 설교, 모두 두 번의 설교를 가졌습니다. 처음에는 부모 품에 안겨서 예배를 드리는 영아들을 대상으로 하다가 차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까지 확대된 소위 어린이 설교는 제가 목회자로 설교했던 아름다운 추억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아이들을 참석시킬 요량으로 목사님 설교를 잘 들으면 공부도 잘하게 되고, 좋은 대학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선전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 어린이 중에서는 서울대학을 비롯해서 유수의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무슨 일이든 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잘 보이는 앞자리에 앉아서, 선생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르침을 잘 듣는 길 외에는 왕도가 없다고 말입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닙니까? 오늘 두 번째 단락의 성령과 악령은 성인 설교라면 몰라도, 어린이 설교에서는 힘든 주제인데, 저는 어른들의 설교 제목과 같이 적용하였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알아듣도록 설교해야 한다는 게 저의 지론이어서, 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얘들아, 참 이상하지 않니? 왜 사람들은 욕을 하거나 나쁜 행동을 할까? 그리고 반대로 왜 착한 말을 하고 착한 행동을 할까? 한번 생각해 보자.”고 말입니다. 저는 그 이유를 마음속에서 무슨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욕을 하고 싶다거나, 반대로 폐지 리어카를 밀어주는 소년에게 칭찬을 해야지 하는 등의 소리 말입니다. 어찌하여 똑 같은 사람이 같은 입으로 욕설과 칭찬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자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답을 줍니다. 그것은 성령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거나, 또는 악한 마귀의 말을 듣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욕을 하고 싶을 때는 마귀의 소리네.” 하고 멈추고, 착한 말을 하고 싶을 때는 성령님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자고 말입니다.

    어른인 우리들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참 많습니다. 어떤 때는 착한 사람으로 살고 있고, 또 다른 때는 마귀의 자식처럼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분명 우리를 조종하는 세력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입니다. 도덕 교육과 신앙교육을 아무리 많이 받았다고 해도, 그리고 수준 높은 학문을 섭렵했다고 해도, 삶의 내용이 하늘과 땅처럼 편차가 크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물론 평소에 쌓아둔 삶의 이력이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는 자신도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없는 어떤 강한 힘에 이끌려서 악행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좀 더 정직하게 말하면, 이해관계나 가족 관계에 얽히게 되면, 평소에 가졌던 올바른 척도가 다 무너져 내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최근 정의의 보루라고 신뢰해 오던 대법원이 정치 집단으로 변신한 현실을 성토하는 국민들이 많은 것이 그 예라 하겠습니다. 무죄 취지로 2심 재판이 끝난 것을 상고한 공판기록물 25천 페이지와, 판결서류 6만여 페이지를 사건 배당 9일 만에 충실한 검토 없이 판결을 내려버린 때문입니다. 최소한의 상식선을 넘어섰다는 것이 일반 국민의 생각 같습니다. 재판에 불만을 가져온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판사의 성향에 의해서 진리가 거짓으로, 거짓이 진리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 등 서구 나라에서는 국민재판 형식을 빌린 배심원 제도를 두는 것이라 합니다. 누구보다도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할 사법부가 정치지망생들의 통로가 되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양심을 저버리고 민주적 절차와 상식이 결여된 현실이라면, 마땅히 지적을 받아야 하고, 제도적인 뒷받침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피 흘려서 얻은 보석인 때문입니다.

 

3. 오늘은 어린이 날이자, 석탄일이며, 저의 부친 59주년 추모일입니다. 아홉 남매 중 일곱이 모여 부모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드리는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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