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 교회가 직면했던 위기는, 인간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냐 아니면 사람의 공로로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힘으로 구원받으려는 공로주의자들이 많습니다. 기독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사람을 살립니다. ![]() 구원을 위해서 인간은 철저하게 무력합니다. 여러 종류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가난과 질병에서, 죄와 죽음에서,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의 구원입니다. 어느 정도 인간의 노력으로 가난과 질병을 이길 수 있습니다만, 죄와 죽음,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는 단 한 걸음도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하고 인간 힘으로 구원의 길을 개척하려는 헛된 시도가 있어왔습니다. 선행으로, 율법을 지킴으로 말입니다. 이런 사상과 가르침은 초대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도 있었으며, 지금도 그 뿌리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과 가르침은 하나님의 구원행동을 비웃는 가장 큰 죄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무시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독교 역사에서 이런 위기를 경험하였습니다. 바로 중세시대 때의 일입니다.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고, 교회당을 세우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에 공헌하는 사람들은 자신 뿐 아니라, 죽은 조상들까지도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길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이며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선행이나 율법준수가 나름대로 좋은 것이지만, 인간의 공로가 될 때, 구원을 위해서라면 지푸라기보다 못한 것입니다. 믿음 역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보다 더 중요한 주제가 없습니다. 거기에서 기쁨과 소망이 시작되는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나 깨나 우리가 받은 구원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구원이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하나님의 구원행동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우리들 인간의 공로나 선행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분명히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지각이나 의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놀랍게도 우리를 믿음 가운데로 불러주셨고, 인도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해서 우리들이 한 일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자랑하지도 교만하지도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른바 작은 믿음이든 큰 믿음이든 모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직 그 귀한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고 있음을 찬양할 뿐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도록 무조건 기도하라고 권고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은 가장 지혜로운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종교를 율법의 종교로 바꾸지 맙시다. 바리새인의 신앙은 언제나 인간 중심적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정죄합니다. 자신만이 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자신의 행위를 주목하고 자랑하며 거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자신의 행위만을 주목하는 결과입니다. 이런 바리새인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적이었습니다. 정죄보다는 용서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어찌 허물이 없고 잘못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자칭 의인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의를 열거합니다. 이레에 두 번씩이나 금식한다고, 세리나 창녀들과는 확실히 의롭게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눅18:9-12). 물론 행위만 비교한다면 자랑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욕되게 만들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좁쌀만큼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율법적으로 남을 정죄하는 바리새 신앙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더욱 넘치도록 힘쓰고 기도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람의 행위나 공로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은혜아래서만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릴 뿐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나 행위는 사람을 주목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 2003년 3월 30일 박성완 목사님의 주일예배 설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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