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7(2000.11.24, 금요일)
성경말씀 : 빌 1:19-24.    
찬송 : 508장.
제목 : 기독교인의 사생관(死生觀).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길 기도 드립니다. 어제 저는 참 귀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윤정숙권사님이신데 올해 93살이 되십니다. 허리가 아프다고 호소하셨지만, 그래도 거동이 양호한 분들이 거하시는 6호실에 계신다고 자신을 소개하시는 분이었습니다. 1929년에 세브란스 대학 간호학과를 졸업, 평생 간호사로 환자들을 돌보는 삶을 사신 분입니다. 3년전까지만 해도 연세대학에서 초청, 후배들과의 만남을 가졌지만 아흔이 넘으면서부터는 소식이 끊겼다고 섭섭해 하셨습니다. 30여년전에 남편을 사별하고, 하나 뿐이던 아들도 전쟁 중에 이별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친구요 안식처였다고 했습니다.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또렷이 대답하셨습니다.  

2. 삶에 대해서 질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적극적인 삶의 자세는 없”는 지 모릅니다. 사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며, 동시에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삶을 충실하게 채워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죽는 것과 사는 것에 대한 분명한 이해, 지금 우리들에게 이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는 일이며,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고백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처럼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부럽고 멋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3. 여러분은 어떤 사생관을 가지고 계십니까? 혹시 누군가에게 자신의 사생관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얘기를, 혹은 글을 남겨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번에 적극적으로 이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물론 어두운 느낌이 잠깐 스쳐지나가게 될 것이나, 결코 부정적인 얘기로 끝나지 않음을 곧 아실 것입니다. 오히려 훨씬 더 긍정적이고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람은 죽음을 앞둘 때 가장 순수해지고 가장 아름다워진다고 합니다. 비록 언제일지 알 수 없는 장래 일이긴 하지만, 미리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실존에 대해서 진지하게 살필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사생관을 가짐으로 해서, 그의 삶이 훨씬 더 간결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심 목표가 세워진 삶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며, 우선 순위가 명확한 생활이 될 수 있었다고 보여 집니다. 우리들 역시 사생관이 필요합니다. 잘 살기 위해서며, 동시에 잘 죽기 위해서입니다. 

4. 우리는 눈앞에 있는 일들에 너무 많은 노력과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것들이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일 것입니다만, 그래도 좀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훨씬 마음이 여유로워질 것입니다. 매일 100미터 달리기를 할 수도, 해서도 안되지 않겠습니까?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열심히 살긴 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눈앞의 일에 골몰하거나 숨가쁘게 몰아쳐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루하루가 모아져서 만들어 가게될 삶(인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매일의 삶이 엮어질 우리의 인생이 어떤 것이 될 것인가에 더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부잣집에 가정교사로 입주해서 1년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말이 가정교사이지, 그 집안의 크고 작은 허드렛일도 도와야 했습니다. 만일 그 때 저의 인생의 어떤 형태를 분명히 내다보지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만 열심히 산다고 했다면 숨이 막혀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살아야 할 삶과는 너무 동떨어진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생관이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완성된 그림이나 조각처럼 머리 속에 만들어 두고서, 그것을 향해서 기운차게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바울이 아니기에 바울과 같은 사생관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사생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윤정숙 권사님은 하나님과 함께 살 영원한 삶을 바라보면서, 매일 감사와 사랑으로 살고 계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오늘 아침엔 너무 무거운 주제가 될지 모릅니다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묵상자료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계시길 기도 드립니다. 승리하십시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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