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5(2000.11.22, 수요일)
성경말씀 : 빌 1:3-11.     
찬송 : 412장.
제목 : 아름다운 기도.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길 기도 드립니다. 

2. 오늘 주시는 말씀은 중보적인 기도에 대해 귀감이 되는 내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봉사는 없다.”는 말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중보의 기도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일 때, 그 기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이며 축복이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여러 차례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생각할 때마다”, “간구할 때마다”,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증인이시라.” 짧은 구절 안에서 이처럼 바울은 그들을 생각하는 자신의 속마음을 주저 없이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중보의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새롭게 배우게 될 뿐 아니라, 이렇게 기도할 대상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를 생각합니다. 기도의 대상이 되는 것도, 기도의 대상을 가진 것도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하는” 그런 대상이 내게 있을까를 확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2. 이 아름다운 기도에는 분명 눈물겨운 배경이 있었던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 사도가 유럽에 개척한 첫 번째 교회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것은 바울 사도가 헬라 문화권에서 자라났다는 것과, 당시 로마 제국은 헬라 문명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이나 생활 습관에서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하나님께서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들을 통해서 곳곳에 유대인의 회당(會堂)을 지어 놓았기에 이곳을 선교의 장(場)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6:11-40에 단편적이나마 빌립보 선교기록(宣敎記錄)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친 여자를 만나 그 처지가 너무 마음 아파서 고쳐준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미친 여자를 점쟁이로 부려먹고 있었던 부자가 관리에게 고소해서 뭇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선을 행하다”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로 돌렸을 때, 옥문이 열리고 옥을 지키던 간수가 감동되어 그 가족이 다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튿날 옥에서 무혐의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다가 이런 봉변을 당하였다고 한다면 어떤 심정이겠습니까? 이 후에 빌립보 교회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 속에서도 착실하게 성장하게 되었고, 바울 사도의 든든한 후견자로 뒤를 받쳐주기까지 하였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제 몫을 다한 교회였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울 사도가 옥에 갇혀 있을 때, 에바브라디도를 병간인으로 보내서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아 드린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랑스러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3. 바울은 결코 감상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중보기도는 세 가지 목표를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풍성”해 질 것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사랑이 풍성해져야 하겠는데,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지식과 총명이 있는 사랑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허물없이 끝까지 살아가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치 못하게 될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거짓과 진실이 구별되는 분명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까닭은 그들의 삶에서 많은 의의 열매가 맺혔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의 열매란, 사람에 의해서 맺으려고 하는 율법적인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맺게 되는 성령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서 너무 단순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의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위해서 목표를 세우고서 기도할 필요를 깨닫게 됩니다.

4. 어제는 존 메퀘리의 [영성의 길]이란 책을 다시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언젠가 영성에 관한 얘기를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말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속에 함께 계심을 믿고,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5. 최근 <중보기도>라는 용어가 보편화되어 있습니다만, 오해하기 쉬운 용어입니다. <중보>란 기독교 차원에서는 하나님과 사람들 중간에 서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성인 숭배나 마리아 숭배가 거부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중보자의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보라는 표현보다는 중보적이라는 말이 훨씬 더 적합하겠습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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