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4(2000.11.21, 화요일)
성경말씀 : 빌 1:1-2.      
찬송 : 405장.
제목 : 기독교인의 존재 양식(存在 樣式).

1. 찬미 예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이 두 구절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기독교회의 인사말이며 유산입니다.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가 받은 사랑에 대한 작은 응답이며,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간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인사는 없지 않습니까? 그 동안 보내 드렸던 묵상 자료에 대해서 몇 분이 의견을 보내 왔습니다. 물론 저를 격려하는 내용들이었지만, 그래서 저도 처음부터 빨리 훑어보니까, 내용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길이가 자꾸 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묵상을 도와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경을 써서 줄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 “한 달에 한 번씩은 빌립보서를 읽어라.” 제가 신학도들에게 가끔씩 전하는 말입니다. 이곳을 다시금 묵상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러분들께도 같은 말씀을 드립니다. 삶이 고단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삶이 즐거울 때에도 빌립보서를 자주 읽으시기를 권면합니다. 분명 여러분의 삶에 청량제처럼 신선한 기쁨을 더해 줄 것입니다.

3. 기독교인의 존재 양식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울 서신의 진정성(저자가 바울인지 여부를 검증하는 신학 작업)을 얘기할 때마다, 반드시 검토하게 되는 문구가 바로 오늘 우리들이 읽은 서두 인사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하나의 양식(포맷)으로 규정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울”이라고 말입니다. 그가 누구이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때에만 그리스도 인이라고 우리들에게 외치고 계십니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인으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점을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구원파들이 이런 점을 혼돈했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증표를 여러 가지로 만들었습니다. 대체로 어떤 체험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나 말씀을 들을 때, 혹은 기도할 때 그들이 받은 뜨거운 성령의 임재를 구원의 증표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날자와 시간과 장소 등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하라고 가르칩니다. 자신들은 언제 어디에서 구원받았다고 증거 합니다. 구원받은 백성이다 는 확신 속에서 살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저의 가까운 가족 한 사람이 여기에 빠졌다가 나오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는 구원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별로 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가는 것도 시들해지고, 기도하는 것도 봉사하는 일도, 기독교인답게 사는 일도 별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구원받기 전에나 할 일들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삶에 대해서 무책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책감조차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잘못된 신앙입니까? 이런 신앙을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4. 기독교인의 正位置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 밖에 머물어 있다면, 그는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아무리 목사 안수를 받고 매 주일 명설교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의 삶의 중심을 두고 있지 않다면,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참된 기독교인일 수가 있느냐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하루 24시간을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되돌아보십시다. 우리는 어떤 때는 제법 근사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힘든 이웃의 손을 따뜻이 잡아 줄 수 있습니다. 빗나가는 젊은이의 등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타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영 아닌 모습으로 살기도 합니다. 가까운 이웃을 속이고, 새치기하고, 터무니없는 욕심에 불을 붙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 안을 들락거리는 모습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그리스도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밖으로 나갈 때는 놀랍게도 마귀 안으로 들어가 있는 상태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주님과 마귀 사이에 중립지대란 없다고 믿습니다. 오직 주님의 종이 되든지, 마귀의 종이 되든지 양단간에 어느 하나에 속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런 자신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기도의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신을 머물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그리스도 밖으로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도 시시 때때로 그런 유혹을 받았고, 실제로 넘어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결코 완전 무결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신을 묶어 두기를 소원했다고 하는 점을 우리는 발견해야 합니다. 

5.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서만 희망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아침 우리의 기도 제목이어야 합니다. “주님, 저를 주님 안에 머물러 있게 해 주십시오. 주님 안에서 말하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일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안에서 이웃을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 안에서만 참 기쁨과 평화가 있나이다.”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기독교인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존재하는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입니다. 저도 여러분들을 위해서 같은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안에 머무르도록 당신의 종들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을 지켜 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Posted by 박성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