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624(2014. 1. 13. 월요일).

시편 시 3:5-8.

찬송 8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꿈은 때로 예술가들의 훌륭한 영감이 되어 줍니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음악이, 괴테는 시가, 애드가 앨런 포우는 소설의 줄거리가, 꿈에서 왔다고 고백했고요. 마르샬리는 [프랑켄슈타인]을 꿈에서 보고 소설을 썼다고 했지요. 입센이 반 최면 상태에서 희곡을 썼다는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이들은 꿈에서 얻은 영감을 음악과 시 소설과 희곡으로 옮겼고, 또 예술가로써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이 있지요. 바로 꿈과 현실을 혼동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최근에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자각 몽/自覺 夢>이 화제입니다.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데요. 자각몽이라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잠을 자면서 꿈을 꿀 때는 대부분 꿈이 꿈인 줄 모릅니다. 그래서 현실처럼 생생하다 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요. 하지만 자각몽은 꿈을 꾸면서 꿈인 줄 압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자각 몽을 꿀 때가 있습니다. 특히 가위에 눌릴 때, 이건 꿈이야. 그리니까 무서워말고 눈을 꾹 감았다 뜨면 된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되뇔 때 같은 경우 말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대로 실행하면, 꿈에서 깰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각몽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꿈속의 상황을 어느 정도 자신의 의지대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각 몽 자체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장점도 있어서요. 정신과에서 외상 스트레스 증후군이나 악몽을 꾸는 환자에게 치료법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자각 몽을 문제시하고 있는 건, 의도적으로 자각 몽을 꾸고 싶어 하, 자각 몽 꾸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욕망과 소망을 꿈에서 이룰 수 있다면, 참 달콤하게 느껴지겠지요. 그만큼 지금 우리의 현실이 젊은이들에게는 힘겹다는 반증이라서 안타깝기도 하고요. 그러나 꿈은 꿀일 뿐, 현실 도피에 불과합니다. 그 달콤한 꿈이 좋아서, 계속 잠만 잘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눈을 감고 꿈만 꾸는 사람은 결국 인생의 장님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요. 내가 꿈꾸는 대로 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바깥으로 담 너머로 나가야 하겠지요. 비록 불가능할지라도 그 꿈을 등불처럼 믿고, 아무리 부서질 듯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말이지요. 삶을 바꾸는 것은 어떤 꿈을 꾸고 있느냐가 아니라, 꿈만 꾸는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꿈꾸는 대로 사느냐, 아닐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1016일 방송>

 

2. 튀빙겐 대학의 신약성서 학자 오토 미헬은 그의 방대한 히브리서 주석에서, 히브리서의 신학적 의도를 7가지로 정리했는데, 그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면,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헬라적 모티프를 수정한 초대 기독교 전승에 뿌리박고 있는 점과, 원칙적으로 하늘이 땅보다 앞서고 땅의 모범을 이룬다는 점,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의 독특성을 엿볼 수 있는 점, 처음부터 끝까지 칠십인 역 구약성경을 인용하는 점, 마지막으로 신앙은 복종이요, 불신앙은 불복종이라는 히브리서의 사상은 구약성경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점이라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제목을 붙인다면 아들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천사들보다 더 높은 분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출발점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주목하고 그것을 흔쾌히 믿는 일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하늘과 땅 그 어디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분이시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 말씀,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고 말씀하시고, 모든 천사들로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다고 귀뜸해 주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 자신이 만드신 천지는 다 없어질 수 있겠으나, 하나님 자신은 남아 계셔서 언제나 동일한 분으로 언제나 변함없는 시간 속에 영존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말씀, “내가 내 원수들을 너의 발앞에 놓을 때까지, 내 오른 편에 앉으라.” 하신 분이 바로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 이시라고. 물론 이것은 우리의 신앙을 통해서만 수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의 이성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3. 오늘부터 이틀간 예배분과 위원회 웍샵이 루터대학교에서 있습니다. 지금 저의 가장 큰 관심 가운데 하나는, 저희 루터교회의 예배 예전의 영창들을 모두 새로운 가락으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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