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51(2012. 9. 27. 목요일).

시편 36:1-4.

찬송 35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소설가 구슈타프 플로베르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고귀함의 방을 하나씩 갖고 있다. 나는 그곳에 담을 쌓고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했다.”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말했지요. “자기의 성을 쌓는 자는 반드시 파멸한다.” 두 사람의 말은 완전히 다른 주장으로 들리지만요,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그 둘이 다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런데 우리는 왜 자기의 성을 쌓는 걸까요? 일단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기의 성안에서는 무엇이든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나만큼이나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성을 지키고 싶어 하고, 부정당하면 화를 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 굳건하게 지키려고 성을 더 높이 높이 쌓아올립니다. 그리고 그 성이 높아질수록 잘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과 피로가 더해지지요. 도대체 이 성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도쿄 대 강상중 교수는 [고민하는 힘]이라는 책에서, 자기의 성은 바로 자아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강상중 교수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자기의 성을 단단하게 만들고 벽을 높게 쌓으면, 자기라는 것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하면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또는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자기의 성만을 만들려고 하면, 자기는 세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궁극적으로 말하면 자아라는 것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확실하게 말하면, 타자를 배제한 자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76일 방송>

 

2. 또 다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계시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표현 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 이다.” 라는 형식을 가진 계시 문구는, 그 전부가 사는 것에 대해서 언급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령,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나는 생명의 빛이다.”(8:12), “나는 문이다.”(10:9), “나는 선한 목자다.”(10:11),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15:1) 등은, 예수님이야말로 이 세상이 추구하는 모든 것이며, 동시에 생명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의 집을 방문한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를 포함한 유족들 뿐 아니라, 동행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를 주셨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요한복음서 기자는 예수님의 베다니 방문에는, 유족들을 위로하러 찾아온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다고 배경설명을 하고 있는 점입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환경을 암시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마르다와의 대화가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라는 말에,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답하셨고,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줄을 내가 아나이다.” 라고 했을 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마르다는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마르다의 신앙이 현재적 생명에 두기 보다는 미래적 생명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과의 동행하는 삶은 지금도 그리고 미래도 언제나 생명으로 풍성한 것인데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신앙의 현주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현재적 구원이냐 미래적 구원이냐? 현재적 풍성한 삶이냐 미래적 풍성한 삶이냐? 베다니 마을을 무겁게 짓누르는 죽음의 공포가, 새로운 기쁨과 풍성한 삶으로 동터오는 여명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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