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53호(2012. 9. 29. 토요일).
시편 36:9-12.
찬송 36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쨌든 전화를 걸기 위해 제일 가까이 있는 아파트 헬스센터로 갔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남편 회사 전화번호를 검색해 전화를 걸었지요. 남편은 휴대전화를 자리에 둔 채 회의에 참석 중이었습니다. 아내인데 급한 일이라고 헬스센터 번호를 남겼습니다. 유치원의 딸아이한테도 전화를 할까 하다가, 현관 번호를 외우게 한 적이 없다는생각이 나서 그만 두었습니다. 5분인지 10분인지 기다리는데 전화가 안 옵니다. 친절한 헬스센터 주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안 되겠다 싶어서 일단 운동을 하면서 기다리기로 한 것, 그게 운동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운동에 취미를 붙여서 열심히 하게 됐고, 덕분에 건강도 좋아졌다고 하지요. 매사에 훨씬 부지런해지고 열심인 듯해서, 기분도 자신감도 훨씬 높아졌다고 합니다. 늘 쓰던 현관번호나 인터넷 비밀번호가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 건, 흔히 지나친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기억력이 떨어져서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런 상태 때문에 오히려 운동을 하게 됐고, 좋아진 게 많으니 전화위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식의 전화위복이라는 거, 생각해 보면 좋은 일은 좋은 일이어서 당연히 좋고, 나쁜 일은 전화위복의 가능성이 있어서 좋으니. 우리 일상에 주어진 건 좋은 것이 훨씬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7월 18일 방송>b.
2.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려내신 기적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들은 주님을 죽일 음모를 갖게 되었다는 게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산헤드린 공의회가 소집되었다고 합니다. 종교와 전통 등을 지도 감독하는 산헤드린 의회가 매우 위험한 주제를 의제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활동이 정치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고, 그 결과 자칫 나라와 민족이 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주장 말입니다. 그것도 당시 최고 지도자인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까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역사가 온 나라에 퍼지게 되면 백성들이 한 마음이 되어 로마에 저항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로마당국의 정치적 박해를 받게 되는 최악의 상태가 올 수도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라고, 예수님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정치적 해석을 내린 것입니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채택하는 것 같습니다. 신앙 따로 정치 따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저는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것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전도 종족을 대상으로 32차례 선교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되 정치 세력화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훨씬 더 크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강요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복음의 본질이 훼손될 것이 뻔 하게 되고, 그 결과 엄청난 대립과 증오 그리고 종교전쟁이 보이는 때문입니다. 지금 기독교와 이슬람의 반목의 근원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언듯 듣기에는 성시화 운동이 복음화의 완성 편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만, 그것이 다른 종교에게 어떤 생각을 갖게 하는지를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지하철 안에서 어떤 불자가 불경을 외우면서 목탁을 두드리고 포교를 한다고 하면, 기독교인으로써 어떤 기분이 들까요? 거기다 절간에 와서 100일 기도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져서 영겁을 고생할 거라고 엄포를 놓는다면 말입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런 신앙을 정치적으로 강요하게 된다면, 다른 신앙의 사람이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요? 성시화 운동은 결국 정교일치를 향해 가는 방향성을 가진 점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힘을 앞세우는 공격적인 자세보다는, 빛과 소금으로 섬기는 포교 자세는 어떨는지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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