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710호(2019. 9. 30. 월요일).
시편 37:29-33.
찬송 48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일상의 사물들을 새롭게 돌아보는 사물에게 말 걸기. 오늘의 사물은 <나비넥타이>입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소설가 이윤기 선생의 소설 중에 <나비 넥타>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박노수의 아버지 박 교수는 지방 대학의 국문과 교수였지요. 그런데 아무도 나비넥타이를 맨 사람이 없던 시절, 박 교수는 항상 나비넥타이만 매고 다녔습니다. 너무 눈에 띄니 보통의 넥타이로 바꾸라고 주위에서 뭐라고 해도, 오직 나비넥타이만 맵니다. 때로는 동네 약수터에 갈 때도 나비넥타이 차림을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별난 사람으로 여겨지다 못해, 아예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절대 나비넥타이를 포기하지 않던 그를, 주인공인 나는 친구인 박노수를 통해 이해합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박노수는 콧수염을 기르고 왔지요. 그의 아버지의 나비넥타이만큼이나 사람들 눈에 두드러져 보일, 그래서 자칫하면 웃음거리가 될 콧수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콧수염은 오히려 박소수가 말을 더듬는 열등감을 정면으로 극복해 낸 한 상징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덕분에 박 교수의 나비넥타이까지 이해하게 되지요. 그 나비넥타이는 곧 사람마다 갖고 있을 특별한 열등감과 그걸 극복해 내는 가장 강력한 도구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남자들 중에는 거꾸로 어린 시절 나비넥타이를 맨 친구들한테 부러움과 열등감을 느꼈다는 경우도 있지요. 서양에서는 연미복이나 이브닝 정장과 함께 갖추어야 되는 나비넥타이가, 우리에게는 예의나 형식을 위해 갖추어야 할 차림이라기보다는, 삶의 수준이나 내면의 상태와 더 관련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소한 소품 하나도 아주 큰 인식 차이를 들어내 보여 준다는 것, 나비넥타이를 바라보면서 인식의 차이와 더불어, 이해의 폭도 한층 더 넓어져야 하겠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KBS FM 출발과 함께. 2010. 9. 2 방송>
2. “솔로몬의 기도(22-30절)”을 읽었습니다. 솔로몬의 기도의 배경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성전을 짓고, 언약궤를 성전으로 모셔온 후, 온 회중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제단 한 가운데 서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리고 드린 기도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범인(凡人)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평범함 속에는 매우 중요한 특별함이 있는 법인데, 솔로몬의 기도에서도 그러리라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첫째 야훼 하나님은 유일 무이하신 하나님이시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큰 문제는 다양한 신을 섬긴다는 사실입니다. 오죽했으면 고 한경직 목사님께서 새해 벽두에 인사하러 간 유명 목사님들에게 “예수 잘 믿으세요.”라는 덕담 아닌 덕담을 했을까요. 둘째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다는 신뢰입니다. 조건은 “길을 벗어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살기만 하면” 이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전을 찾아 간구하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는 감사입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시대에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은 저 만이기를 바랍니다. 교회당이 더 이상 하나님이 계시는 곳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성전을 정화하려고 장사꾼들을 쫓아내시던 주님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야학 선생을 몇 달간 한 일이 있습니다. 주로 서울 역과 남대문 시장 등에서 껌을 팔거나 구두를 닦는 청소년들이 학생이었습니다. 교실을 구하지 못해서 남산 백범 동상이 있는 야외 음악당을 오르는 넓은 계단을 주로 사용했는데, 밤에도 계단을 오르는 산책객들을 위해 조명이 밝았습니다. 교사들은 비가올 때는 비를 피할 곳도 없어서 휴강을 하기 일수였습니다. 그래서 큰 교회당에 방 한칸을 빌려달라고 간청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습니다. 교회당의 모든 문들은 꽁꽁 닫혀 있었습니다. 관리할 사람과 비용 문제가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집이 캄캄한 빈집으로 뎅그라니 놓여 있었습니다. 최소한 기도할 수 있는 방 한칸은 안내하고 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1970년도에 연세대학에는 기도의 방이 24시간 열려 있었습니다. 학생회관에 마련된 작은 방이었는데 한 열 댓명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었습니다. 매일 수업 전 30분 동안 기도의 동지 너 댓명과 모여 기도드렸던 기록물을 찾았습니다. 행복한 얼굴로 기도실을 나서던 추억을 깨워주었습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이 굳게 닫히지 않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도자들을 만나 주시는 곳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기도자들보다 장사꾼들이 더 많이 출입하는 교회라면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습니다.
3. 묵상자료가 배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제 글을 읽으시려면 저의 블러그(lutherfriend.tistory.com)에 들리시면 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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