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312호(2021. 5. 24. 월요일).
시편 시 6:1-3.
찬송 48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셨는지요? 일을 하다보면, 조리 있게 말을 해서 상대방을 설득해야 할 때도 있고, 또 그러다보면 그 말이 스트레스가 돼서 지치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말하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대화전문가 이정숙 씨는 때론 말 보다는 침묵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하면서 이런 글을 남겼는데요. “나폴레온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침묵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카리스마는 병사들에게 연설을 하기 전 몇 초 동안 침묵하는데서 나왔다고 한다. 지금은 침묵의 시대가 아니라, 설득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잠깐의 침묵만큼 강한 설득력을 갖는 것은 없다.” 연설하는 것은 대중을 설득하는 것이지 않아요? 오히려 침묵이 더 강한 설득력이 있다고 전문가는 이야기합니다. 말은 많이 하면 실수하기 쉽고요. 또 너무 말이 없어도 재미없지 않아요.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고 또 만난다는 것, 물을 건너기 위해 놓인 징검다리처럼 서로에게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 징검다리는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어야 건너기가 편하고요. 침묵은 징검다리의 빈 곳처럼 대화의 적당한 시간과 또 거리를 줍니다. 어떤 분은요. 학창시절에 이런 교수님이 있으셨대요. 그 교수님은 강의 시간에 학생들이 수업을 들을 준비가 더 되어있으면 잠깐 동안 침묵을 하셨는데, 그러면 그 떠들던 학생들도 교탁에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교수님의 침묵 때문에, 서로들 툭툭 쳐가면서 수업 준비를 하곤 했다고 하네요. 교수님의 그 침묵 “조용히 해!” “떠들지 마!” 이런 말보다 더 효과적이었겠지요? 침묵은 이렇게 스스로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 같습니다. 또 상대방과 어떤 오해로 화가 났을 때, 서로 언성을 높이는 것 보다는, 잠간의 침묵이 큰 싸움을 피하게 해 준다고 합니다. 화는 누구나 나는 것이지만, 그 화를 내느냐 아니면 참느냐 하는 것에 따라, 다른 삶을 산다는 틱 낫한 스님, 좋은 잠언집을 많이 만드신 분이지요. 틱 낫한 스님의 말씀도 침묵의 중요성을 은연중에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년 5월 30일 방송>
2.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제자로 스승이 제자에게 쓴 두 번째 편지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을 때 가슴이 뭉클해 옴을 느낄 것입니다. 저도 가끔 이런 가슴 벅찬 편지를 받을 때가 있는데, 미사여구 때문이 아니라, 솔직 담백한 마음이 보일 때가 그렇습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20년 전에 종영했던 <전원일기>를 재방송하게 되어 시청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평범한 농촌의 일상이 단막극처럼 소개되고 있는데, 타산지석으로 삼을 에피소드들이 참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모두가 제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모습들이 너무도 닮아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많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충고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사도는 흔한 말로 꼰대식 충고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삶과 신앙을 비추며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 신선하게 와 닿습니다. 밤낮으로 드리는 기도 속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이며,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누군가의 서러운 눈물을 기억하고 있고, 만나게 될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클 것이라는 말도, 무엇보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이름까지 기억하며 그들의 신앙이 대물림했다는 대목 앞에서는 이런 관계의 사람들은 결코 헛된 삶을 살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편지는 디모데를 안수했을 그 옛날로 돌아갑니다. 사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의 선물을 생생하게 간직하기를 부탁합니다. 이런 권고는 오늘의 저도 예외가 아니어서 정신이 화들짝 들었습니다. 갑자기 제가 안수를 받던 장면이 얼굴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선배 목사님들 다섯 분이 설교와 축사 권면 등을 하셨고, 생면 부지였던 부산의 유명 목사님 두 분이 오셨는데, 그 중 한 분이 즉석 축사를 하셨는데, 내용 중에는 “어제 영국 애딘버러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로 시작된, 대학 은사님이 유학중에 저의 안수일을 기억하시고, 당신을 대신해서 두 분 제자 목사님들에게 축하를 부탁하셨던 냐용이었습니다. 사실 은사님은 구약교수로 대학원에 가서는 자주 뵙지도 못했었고, 구약과 신약을 두고 전공을 선택해야 할 때, 제가 신약을 택하는 바람에 많이 서운해 하셨을 텐데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이라는 선물을 넘치게 받은 것입니다. 꿈도 꿀 수 없는 대학에 진학한 것은 물론, 목사까지 되는 과정에서 어려운 고비고비를 잘 넘어가도록 인도해 주신 그 다함없는 은총 말입니다. 그리고 사도의 편지에서처럼, 비겁한 마음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까지 주셨으니 말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은 어느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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