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759호.
시편 시 91:1-3.
찬송 24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작가 박완서님은 이렇게 표현했지요. 바닷가에서 열심히 모래성을 쌓았는데, 어느 순간 큰 파도가 밀려와서 쓸어가 버리는 그런 관계이다. 아무리 개인이 행복해지고 싶어도 사회에 큰 일이 터지면, 그게 곧 파도와 같은 위력을 발휘한다는 얘기인데요. 그렇게 우리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나라와 사회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월 8월 15일 방송>
2. 성령강림절후 열째 주일의 구약 렘 23:16-29을 본문으로 “하나님께 신탁 받은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유대 나라는 아주 긴 시간동안 정교일치의 시절을 가졌습니다. 근대 문명과 공화제 그리고 의회 민주주의가 도입된 18세기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나라는 종교가 세속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본문을 살핍시다.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외쳤습니다(16-17절).
어느 시대나 전쟁과 패망 그리고 포로로 잡혀가던 절망적인 혼란기의 특징은, 무질서와 유언비어 그리고 거짓 세력이 준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주전 627-580년 생존) 이런 시대에 예언자로 활동하였는데, 수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동족상잔의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60년대 말은 박태선의 전도관과 문선명의 통일교가 나라를 뒤숭숭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성령 하나님을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 선비 같은 교회 분위기를 들뜨게 하였고, 이에 맞바람을 일으킨 오순절 운동이 크게 차별화하지 못하자, 한국 기독교회는 이단들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이런 기독교 아류들은 성경의 권위를 무참히 짓밟아 버리기 위해 성경에 의문을 품게 만들고, 연약한 성도들을 흔들었고, 신종 면죄부인 전 재산을 바치게 하는 거짓 신앙을 주입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세속적인 축재가 최종 목적이었습니다(18-24절).
전도관이나 통일교 그리고 구원파와 신천지의 교주들은 아방궁을 짓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음을 보였습니다. 입으로는 영원한 삶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거대한 지상 낙원을 건설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한때 마케팅이론을 교회 성장학에서 열심히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는 일 못지않게, 소비자의 허영심을 자극해서 물건을 파는 상술처럼, 수완 좋은 교회 지도자들은 복음을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요리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도 거짓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손으로 만질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감각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그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일상과 고난과 십자가 뒤에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꿈을 앞세웁니다(25-29절).
어느 신학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 인간이 구원받기에 필요한 말씀으로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아쉬움을 말하는 내용은, 자신들이 궁금해 하고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누구에게나 먹기 좋고 입에 맞는 음식이란 없는데 말입니다. 깨달아진 하나님의 말씀이란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삶의 경험이 뒷받침 될 수도 있습니다. 인내와 시련의 강을 건너야 제 맛이 나고 깨달음이 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거짓 예언자들은 흥미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성공의 비결을 말하는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꾸었다는 꿈을 앞세웁니다. 대부분의 꿈은 우리 인간의 희망사항이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거짓 예언자들을 향해서, “꿈을 꾸는 예언자들은 꿈 이야기나 하라.” “그러나 내 말을 받은 자는 내 말을 성실하게 전하라.”고 권고합니다. 우리가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이유입니다.
3. 위스콘신의 임구원목사님은 손자 기드온의 사진을 보내오셨고, 상해의 고진경님은 근황을 알려오셨습니다. 우슬초목사님은 최근 CTS 수어찬양에 수고하신 농인교우들을 격려하셨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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