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266(2024. 1. 3. 수요일).

시편 시 37:35-37.

찬송 24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풀이나 꽃을 보기 힘든 겨울에도 푸른 잎에 붉은 꽃을 피워내는 나무를 옛 사람들은 동백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차가운 대지에서도 굴하지 않고 가장 싱싱하고 아름다운 그 모습을 지상에서 가장 곧은 절개라 부러워하곤 했습니다. 꽃이 질 때도 동백은 한 잎 한 잎 지지 않고 꽃 송이채 툭 떨어져 그 끝을 알리지요. 그리고 눈이나 땅 위에서도 1주일 동안은 시들지 않고,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동백의 모습을 본 선조들은, 허망하게 하루하루 스러지지 않고, 동백처럼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이러한 말을 늘 되뇌곤 했습니다.

    “눈 속에 피어난 붉은 꽃/ 추위도 참고 아픔도 참고/ 자식을 사랑하는 오직 한 마음 어버이 마음/ 붉은 동백 꽃, 아 동백꽃 아 동백 꽃/ 아 붉은 동백꽃

    붉은 색은 세련된 느낌은 좀 덜합니다만, 그 어느 색조보다도 강열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빨간색은 지구위의 그 모든 정열적인 것을 상징하는 색으로 일찍부터 자리를 잡았습니다. 불과 태양 따스함과 온기 그 모든 것들은, 붉은 색과 더불어 떠오르는 이미지이지요. 동백의 붉은 색을 보고 시인은 동요를 주로 지어온 이답게, 세상에서 가장 지고지순하고 강열한 사랑인 부모애를 떠올렸습니다. 그 마음을 작곡가 역시 짐작하고, 가장 시가 지닌 문인의 분위기를 살려 하나의 곡으로 담아냈지요. 강 신욱 시 이 수인 곡 <동백꽃>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13일 방송>

 

2. “생명의 빵(22-33)”을 읽었습니다. 신학교에서는 <해석학>이란 과목에서 “Text in Context”라는 용어를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해석하거나 이해하려는 텍스트인 본문(말씀), 반드시 그 말씀과 관련된 환경이나 배경 맥락 등을 통해서 해석 내지는 이해해야 한다는 방법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어떤 말씀도 가장 적합한 배경 속에서 이해하게 될 때 올바른 말씀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흥미롭게도 오늘 요한복음서 기자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잔잔한 티베리아 호수가 클로즈 업 됩니다. 거기엔 배가 한척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그런데 티베리아에서 배 몇 척이 오천 명을 먹이셨던 뱃세다 주변까지 비춰주는데, 그들은 그곳에서 예수님과 제자들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서 가버나움으로 배를 타고 갑니다. 호수를 건너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물었습니다. “주님, 언제 이쪽으로 오셨습니까?” 주님의 대답은 엉뚱합니다. 그들이 찾는 것은 주님이 행하신 기적의 의미를 깨달은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은 때문이라며, 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해서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는 양식을 얻도록 힘쓰라고 말입니다. 그런 다음에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양식(영원하고 없어지지 않는)은 인자이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쩌다가 저도 맛집을 찾는 대열에 끼어버렸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대학 동창들이 한 달에 한번 꼴로 모임을 갖는데 맛집 탐방처럼 야단법석입니다. 아예 다음 달 호스트에게 이런 저런 맛집을 소개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제 입가엔 뜻 모를 미소가 번졌습니다. 소위 가성비 좋은 맛집에 저 또한 가세했기 때문입니다. 썩을 양식이란 육신의 배고픔을 채울 양식을 통칭하겠습니다. 반면에 썩지 않을 영원한 양식이란 주님의 말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주님의 말씀, 기록된 성경말씀을 비롯해서, 말씀을 풀어낸 이해와 감동을 주는 설교말씀,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의 실재인 성찬을 통틀어서 일컫는다 하겠는데, 이 말씀을 먹고 배부르고 기쁘고 감격에 겨워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일단 슬픈 일이긴 합니다만, 적어도 한국 사람에게는 육신의 양식은 잘 먹는다 해도 하루 세 번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한 끼의 육신의 양식의 효력시간은 휴식과 잠자는 시간을 제하면 12시간을 활동하는데, 그것을 3으로 나눈 4시간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영의 양식은 제대로 먹기만 하면 적어도 하루는 효력이 있지 않을까요? 모세 때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와 메추라기의 효력이 모두 12시간에 불과했다면, 영의 양식은 그 갑절은 될 수 있으니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우리가 발을 땅에 붙이고 있는 한은 육신의 양식과 함께 영의 양식도 균형있게 섭취해야 건강하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하루 30분은 묵상을 해야 할 거룩한 의무가 있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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