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68(2025. 2. 8. 토요일).

시편 106:1-3.

찬송 48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류사에 지대한 공헌을 남긴 선한 인물이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갈까. 기독교에 관심을 가져본 이라면 한 번쯤 던져봤을 법한 질문이다. 저자 레이첼 헬드 에반스도 중학교 시절 비슷한 의문을 품었다. ‘<안네의 일기> 주인공이자 나치의 희생양인 유대교인 안네보다 기독교인인 나치 관계자가 구원 가능성이 더 클까란 의구심이다.” 국민일보. 2.7.

 

2. “악령에 사로잡힌 아이(14-29)”을 읽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일지라도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때가 더러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안네의 일기에서 안네가 남긴 의구심처럼 말입니다. 구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많은 질문들이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성경의 한 구절을 들이밀며 마치 최후의 심판의 판사처럼 단언적인 말을 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소위 믿습니다.”라는 한 마디 말로 구원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은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한 아이가 발작을 일으켜 땅에 뒹굴며 입에 거품을 무는 그런 병을 고치러 왔는데, 이를 두고 제자들과 율법학자들 간에 말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치유 기적에 대해서 소문도 무성하였고, 사실 자신들도 그 장면을 목격한 터라 이를 두고 바리새파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귀신의 왕으로 매도하였을 것이고 제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맞서는 다툼이었을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난치병이나 불치병에 대해서 다른 어떤 진단조차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이런 병의 원인을 귀신의 장난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읽은 병은 일반적으로 지랄 병 혹은 간질병이라고 부르는데, 현대 의학에서는 뇌전증(腦電症)으로, 완전히 고치기는 어렵지만, 그 증세를 미리 예측할 수 있어서 사전에 약을 먹으면 예방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르친 학생 중에 두 명이 이런 병을 앓아서 한 명은 제가 병원에 데리고 가서 처방을 받아 투약으로 예방을 하는데, 그 증세가 확실해야 함으로 그걸 증명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아무튼 중국이나 몽골 등에서도 이런 병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도 그리 귀한 병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병의 무서운 것은 불이나 물이든 어디든 넘어져서 뒹굴기 때문에 목격자가 없다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벌떡 일어나 가던 길을 가는 병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 어린 환자를 고쳐 주셨는데, 그의 아버지가 하실 수만 있다면 자비를 베푸셔서 도와 달라.”고 할 때, “할 수만 있다면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 안 되는 일이 없다.” 말씀하셨고, 그 아버지는 저는 믿습니다.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라고 요청하자, 악령을 쫓아내신 것입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제자들이 주님께 어찌하여 자신들은 악령을 쫓아내지 못합니까? 물었을 때,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질문해야 합니다. 기도가 대체 무엇이기에 기도의 힘을 가르치신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기도는 모든 연약한 인생들이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하는 신앙행위인데,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기도는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하는 일로, 이는 무조건 주문처럼 믿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성과 경험에 비추어 하나님의 도움과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말과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성과 성실성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수많은 일들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고백하곤 합니다. 그때마다 입버릇처럼 하나님 은혜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서로 간의 인격적인 대화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마치 사랑하는 부모님과 친구에게 신뢰의 인사를 나누듯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격적인 신뢰 없이 그저 하나의 신앙행위에 불과하듯 의례적으로 말하는 기도를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들으실 리가 있을까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하얗게 쌓인 장독대의 눈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독백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쌓인 눈처럼 온 세상이 평화롭게 하옵소서!”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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