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64(2025. 2. 4. 화요일).

시편 105:34-36.

찬송 1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은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인류는 세 부류로 구분된다. 행동할 수 없는 사람들과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세 부류 중에서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할까? 행동할 수 없는 사람은 아니어야 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2. “4천명을 먹이신 기적(1-10)”을 읽었습니다. 배고픈 군중들에게 떡을 먹이신 기록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5천명에게 먹이신 기적 일화와 오늘 본문입니다. 그런데 5천명을 먹이신 기록은 공관복음서에서 모두 다 취급하는데 반해서, 4천명을 먹이신 기적일화는 마태복음서와 오늘의 본문입니다. 미루어 짐작해 보면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떡을 먹이신 기적은 이 두 번의 일화만이 아닐 것입니다. 6:26에 보면,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는 말씀에서도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수 있는 기회는 행운으로 여겼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넘쳐나는 21세기에도 이렇듯 먹을 것을 찾는 사람들이 이 세상 안에는 여전히 많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사흘씩이나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먹지 못한 군중들을 바라보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굶은 채로 집으로 돌려보낸다면 길에서 쓰러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여기는 외딴 곳이어서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빵을 구할 수가 없다고 대답하자, 주님은 빵이 몇 개나 있느냐고 물으셨고, 일곱 개가 있다 대답하자 주님은 사람들을 자리에 앉게 하시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떼어서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일곱 개의 빵으로 4천명이 배부르게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4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사흘씩이나 굶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해답은 주님의 제자들이 가진 것을 전부 내놓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주님께서 축복하시자 4천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 어느 구석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해답은 무엇입니까? 제가 사는 아산에는 청백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13601438) 대감의 옛집 <맹 씨 행단/ 孟氏 杏壇>이 있습니다. 고불 대감은 복잡한 정치에서 물러나 이곳 아산에 머물기를 좋아했는데, 하루는 지역 최고 관리인 현감이 대감을 찾아왔더랍니다. 그런데 사는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민망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붕은 관리를 안 해서 비가 오면 새고, 둘러보니 먹을 양식이 부족한 게 역력했습니다. 그래서 현감이 직속 부하인 아전에게 쌀 10섬을 들여놓으라고 명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자니까 밖에서 웬 사내가 읍소하며 간청하더랍니다. 자신의 아내가 해산/解産을 하고 몸을 풀어야 하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도움을 받으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고불 대감은 지체하지 아니하고, 조금 전에 현감이 들여놓았던 쌀 10섬을 그 가난한 백성에게 가져가라 명한 것입니다. 이 장면을 지켜본 현감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하기를 대담의 처지도 그 못지않은데 그걸 다 주어버리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라고 묻자, 내 형편을 잘 아는 사람이 보고만 있겠는가? 라고 대꾸했다 합니다. 문제 풀이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작고 보잘 것 없어보일지라도 가까운 우리 자신이 문제풀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형편을 잘 아시는 분께서 두고만 보시겠습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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