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61호(2025. 2. 1. 토요일).
시편 105:25-27.
찬송 20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미주 한국일보에 실린 오피니언의 몇 줄이다. “포토맥 강가에 섰다. 25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25년 전 덜레스공항을 통해 이민 수속을 밟은 후 두 달여 동안 이곳에 머물다 동생이 살고 있는 다른 주로 떠나버렸다. 다시 이곳을 찾아와 포토맥 강가에 서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보니 엠’이 부른 ‘바빌론 강가에서’란 노래가 떠오른다. 유대인들은 70여 년 동안 바빌론에 끌려가 포로생활을 하면서 그곳에서 느낀 타국의 서러움과 고향인 ‘시온(Zion)’을 그리며 바빌론 강가에서 노래를 불렀던 그들이 왜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2024. 2. 27. 안초희.
2. “유대인들의 전통(1-23절)”을 읽었습니다. 전통이란 오랜 세월 속에 길들여진 습관들이 개인이나 사회 속에서 규범화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전통은 강제하는 힘을 가진 법보다도 더 끈끈하고 단단한 힘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이런 전통은 한 인간이나 가정 그리고 사회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유대인의 두 가지 전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위생과 건강을 위해 집집마다 5-6개의 물 항아리를 두고 외출 후 손과 발을 씻는 전통 소위 <정결례>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감사나 기타 목적을 이루었을 때 드리기 위해 준비하는 예물 <고르반>이란 전통이 그것입니다. 저는 평화방송을 자주 시청하는데 예배를 시청하기도 하고,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시청하기도 하는데 많은 유익을 얻곤 합니다. 그런데 제가 속한 개신교회에 비해서 뚜렷하게 다른 특징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똑같이 말씀선포에 강조하면서도, 개신교회는 선포 그 자체로 끝나는데 반해서 로마 가톨릭의 강론에서는 실천을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이런 강조점 때문인지는 몰라도, 로마 가톨릭교회는 행위에 강조한다는 비판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굳이 야고보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행함이 없는 신앙생활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이제 예배는 끝났습니다. 세상으로 나가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증거하십시오.” 마지막에 선포하는 소위 파송의 인사말이었습니다.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임에 분명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요긴하게 사용하였던 6개의 항아리는 정결례에 사용할 도구였습니다. 물이 귀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빗물을 받아서 그릇을 씻거나 자신들의 손발을 씻고 밥을 먹곤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본받을 만한 매우 중요한 전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들은 손과 발을 씻지도 않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스푼이나 포크, 나이프 등이 없이 식사를 하는 습관 때문에 이 손을 씻는 법이 엄격하게 지켜지도록 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왕하3:11). 엘리사는 엘리야의 종으로 그를 섬겼고 주인이 손을 씻도록 물을 부어주는 일은 종이 할 일이었습니다. 이렇듯 건강을 위해서나 청결을 위해서 정결례는 순기능이 아주 많은 것이므로 반대하거나 부정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통에 대한 시각은 당시 종교지도자들과는 사뭇 달랐던 것이 예수님의 견해였습니다. 그 실례로 든 것이 저 유명한 <고르반 전통>이었습니다. 고르반의 기원은 레 1:2, 2:1, 3:1, 민 7:12-17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고르반이란 뜻은 “하나님께 드림이 되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하나님 전에 바치지는 않았으나, 바치기로 작정하고 따로 떼어놓은 재물을 의미하였습니다. 수입이 생겼을 때 먼저 하나님께 드릴 량으로 예물을 떼어놓지 않으면 정작 드릴 때가 되었을 때, 써 버리고 없어진 후여서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경험에서 나온 전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전통이 아주 여지없이 변질되어 버렸던 것을 주님은 지적하셨습니다. 가령 부모나 형제가 돈이나 재물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빌려줄 마음이 없으면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고르반 뿐이라고 거절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림이 된 것을 부모든 형제든 더 이상 조를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좋은 제도나 전통 심지어 좋은 법까지도 얼마든지 역기능을 할 수 있다는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사랑이 없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핑계였던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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