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95호(2024. 5. 11. 토요일).
시편 시 65:6-8.
찬송 17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을소 시인은 늦깎이로 문단에 등장했지만, 10권 이상의 시집을 냈다. 그의 눈이 어린 손녀에 꽂혔던 어느 날 이런 시를 썼다. “나는 혼자라네. 엄마 아빠 있어도 슬프고 외롭다. 엄마 아빠 일하러 가고 나면. 보고파도 볼 수 없어. 나는 언제나 혼자. 엄마는 공부하러 간다고 밀라노로. 아빠는 회사일 바쁘다며 울산으로 서울로. 다 떠나버려 나는 외톨이. 때때로 슬픔이 찾아와서 함께 울어준다네. <중략> 그러나 이 세상엔 외롭고 불쌍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마음을 바꾸기로. 그래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할머니 말씀같이.”
어린 손녀에게 고독을 가르친다거나, 외로움을 얘기하는 것은 너무 무거운 주제여서, 가장 쉬운 말로 이웃들을 소환한 것이리라. 혼자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지혜이고 행복이라고 말이다. 다행이 손녀가 그걸 눈떴으면 하는 바램이다. 신을소 시집, <외출>, pp.90-91. 박성완 24. 5. 10.
2. “칠십 장로가 주의 영을 받다(16-17절, 24-29절)”을 읽었습니다. 최근 어느 유명 논객이며 유튜버인가 어느 당을 향해서 “성령이 나간 당”이라는 혹평을 해서 그분이 기독교인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그분이 말하는 성령이란 바탕이 되는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추측해 봅니다. 그분은 무종교인이라 스스로 밝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누군가의 연설이나 글의 논조를 보면 기독교인 여부를 떠나 기독교적인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없진 않지만, 좋은 분위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수 풀씨처럼 생겼고, 브델리움(노르스름한 색) 같은 만나를 주셨음에도 고기를 먹지 못했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그들을 바라보며, 그러자 모세는 어찌하여 제가 낳지도 않은 이 백성을 제 어깨에 지워주십니까? 라고 하나님께 항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사이신 하나님은 그들이 코에서 고기 냄새가 나서 구역질이 날 정도로 만들어 주시겠다 약속하십니다. 모세는 또 투정을 부립니다. 어떻게 한 두 사람도 아니고 60만 대군이 이 백성에게 다 먹을 수 있는 양의 양고기 소고기를 주신단 말입니까?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지도자 70인을 데리고 오라 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장막을 둘러 서 있는 70인 장로에게 모세에게 주셨던 성령을 주셨고, 그들은 모두 입신/入神했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장로 명단에 있던 두 사람, 엘닷과 메닷은 모세를 따라 성막으로 가지 않고 진중에 남아 있었는데, 그 두 사람에게까지 성령이 임해서 진중에 있는 백성들 앞에서 입신하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그 두 사람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모세에게 고했으나,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질투하지 말라고 타일렀다는 대목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구약에서는 흔치 않는 집단 입신 장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구하지도 않았던 70인 장로에게까지 성령을 주신 것일까 하는 물음입니다. 이 질문은 오늘 본문에서는 남이 가진 선물을 보고 질투하게 하는 어린애 같은 생각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행 1:8을 비롯하여 요 14장고 16장에서 성령의 역할을 잘 풀이하고 있는데, 성령을 주신 목적은 우리와 함께 하시려는 것과,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증거하게 하시며 죄를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게 하시고, 어떤 행동을 금하게 하시고, 중재하게 하시는 등 수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만일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든지,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른다든지, 죄를 죄로 깨닫게 된다고 하면, 이는 성령 받은 사람들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다른 성도와 다른 낯선 모습, 방언을 말하고 병을 고치고 보통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예언을 하는 것을 성령의 역사/役事로만 배웠는데, 사실 이런 것들은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뜻과는 많이 변질된 요소라 하겠습니다. 죄를 죄로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모든 의지와 마음과 생각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3. 어제는 대학 동기인 <굿네이버스>의 창립자인 이일하목사님의 초청으로 굿네이버스 활동을 둘러보았고, 오늘은 대학 졸업 50주년을 축하하는 연세대학 총장의 초청으로 모교를 방문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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