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93호(2024. 5. 9. 목요일).
시편 시 65:1-3.
찬송 54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별주부전>을 보러가는 사람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러가는 사람은 눈물 보자기를 준비해야 하는가 여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웃음을 기대하는 사람과 눈물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에는 애통하는 자의 복이 있다. 애통한다는 말은 애간장을 끓이며 슬퍼하는 일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우리는 가끔 애간장을 끓이며 슬피 우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남의 일이긴 하지만, 그 서러움은 왠지 모르게 우릴 슬프게 한다.
마태복음서에서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는데(마 5:4), 누가복음서에서는 우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한다(눅 6:21). 가난한 것이 반드시 복이 아닌 것처럼, 모든 슬픔에도 위로와 복이 오는 것도 아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슬픔이란, 냉소와 절망을 가져올 뿐이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이 슬퍼하기 때문에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당하는 슬픔 중에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위로를 발견하기 때문에 복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분명히 슬픔 속에 빠져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보다 더 슬픈 사람은 없을지 모른다. 세상을 다 잃은 듯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고,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때 누군가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없이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등을 토닥여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큰 힘과 위로를 받을 것이 틀림없다.
2. “다니엘의 꿈 : 네 짐승(9-14절)”을 읽었습니다. 유독 꿈을 자주 꾸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목회할 때 바닷가 고성에서 이사해 오신 집사님이 계셨는데, 그 분은 새벽기도회가 끝나면 그 전날 밤에 꾸셨던 꿈 얘기를 하면서 해몽을 요구하셨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도 나고 그 분의 삶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겠다 싶어 관심을 가졌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다 보니 제 밑천이 다 들어나서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꿈을 거의 꾸지 않는 사람에게는 매일 꿈에 시달리는 분들을 보면서 한편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 생활의 고통도 모자라 꿈속에서 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본문에 주인공 다니엘 역시도 제대로 잠 못 이루는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던 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가 꾼 꿈은 보통 사람들에게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서운 꿈이었습니다. 네 짐승이 등장하는데 사자 몸뚱이에 독수리 날개를 한 생물이고, 두 번째는 곰 몸뚱이에 갈지 세 개를 물고 있으며, 세 번째는 호랑이 몸뚱이에 머리가 넷 옆구리에는 새의 깃털 달려있습니다. 네 번째는 형용하기 힘든 무서운 짐승인데, 쇠로 된 이빨을 가졌고, 뿔이 열 개나 돋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목해서 바라보니 열 개의 뿔들 사이에서 작은 뿔 하나가 솟아나 먼저 나온 뿔을 뽑아내고 있었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뿔이 계속 건방진 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 짐승은 처형을 받아 불속에 던져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밤에 또 꿈을 꾸었는데, 사람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하나님 앞으로 인도되는데, 모든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모든 백성들에 의해 섬김을 받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반부에 나오는 기괴한 네 짐승의 꿈은 심판을 연상하게 하는 내용인데 반해서, 후반부에 나오는 구름을 타고 오시는 사람에 관한 꿈은 재림주로 오실 하나님의 아들을 연상하게 하는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세상 끝날과 심판이라는 성경의 대 주제에 대해서 종종 둔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일에 취해서 아니면 세상 즐거움에 빠져서 다들 잊고 사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심판과 천국에 관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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