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02호(2024. 5. 18. 토요일).
시편 시 66:13-15.
찬송 5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신학자나 목사가 아닌 한 평신도가 예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때부터 부활 승천할 때까지의 노정을 성경을 토대로 소설을 쓴 것이 <왕국의 비밀>이다. <벤허>나 <쿼바디스>와 같은 유의 종교소설인데, 기독교 신앙에 이르는 또 다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소설의 주인공 마르쿠스는 부유하고 학식 있는 로마인으로서 예수님이 처형당하는 바로 그 순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그의 죽음 앞에서 많은 것을 생각한다. 예수는 누구인가? 그가 정말 이스라엘 하느님의 아들인가? 그의 가르침은 무슨 뜻인가? 그의 왕국의 비밀은 무엇인가? 묻는다. 이런 물음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게 하고 부활을 체험하게 하며 참 부유와 고상한 삶이 무엇인지 자문하게 한다. 주인공 마르쿠스는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분이 생전에 행한 기적을 추적해 가면서 이성을 초월하는 힘을 발견한다. 복수와 사랑의 쟁취를 버리고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되어 간다. 왕국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주인공이 겪는 고난과 멸시, 냉대는 모든 신자가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해 밟아나가야 하는 과정임을 일깨우며, 등장인물들의 모범은 메말라 가는 현대인에게 사랑을 일깨운다. '비밀을 알고 싶다.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무언가 새로운 힘이 솟구치는 일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뛰어난 인물을 만나고 싶다.' 마르쿠스는 정처 없이 순례하며 끊임없이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버림받은 땅 팔레스티나, 노예들의 땅, 이스라엘에서 만난 그 놀라운 인물, 잊을 수 없는 진리에 그는 인생을 걸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연인 예수에게 빠져 상상하지도 못할 삶에 자신을 던졌다. 그는 어느 때보다 행복했고 기쁨으로 온몸이 떨렸다.’
M. 월터리, 왕국의 비밀, 성찬성 역, 1980. 바르톨로메오 신부 감상평.
2. “예수의 옷에 손을 댄 여자, 살아난 회당장의 딸(18-26절)”을 읽었습니다. 현대 시를 활짝 꽃피운 소월/素月 김정식/金定湜은 <초혼/招魂>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망자/亡者가 된 옛 연인의 이름을 불러내는 시입니다. 그런데 무당들의 씻김굿을 할 때는 망자를 불러내어 평안히 저승으로 가기를 비는 굿을 한판 벌입니다. 망자가 이승에서 맺힌 한이 많아 집안이 형통치 않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행하는 것이 씻김굿인 때문입니다. 씻김굿의 효험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옛 사람들은 그런 굿을 한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죽은 딸을 살려주시라는 회당장이 등장하고, 이름 모를 한 여인이 열 두 해나 하혈병으로 고생하다가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잡으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찾아온 여인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 과학시대에는 인간의 인체가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병이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해서 고칠 수 있게 되었지만, 2천 년 전에는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라, 무당의 주술에 의해서 병을 고치려는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하혈병(성경에서는 혈우병으로 번역)에 걸린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잡으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잡았고, 마침내 병을 고쳤다는 신비로운 일화를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사실 과학문명의 시대라는 지금도 난치병이나 불치병들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제 대학 동창은 지난 코디드 19을 겪으면서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버린 얘기를 들려주었는데, 전염성이 높다며 면회마저 못하고 장례식도 참석할 수 없었다는 비통한 현실을 다시금 일깨워주었습니다. 열 두해를 고생한 여인에게 있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질병으로부터 해방되고자 노력해 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택한 방법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일에 대한 희망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여인에게는 희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희망이 주님을 찾아 나온 것이고 그 희망이 주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면 질기고 질긴 병에서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희망은 믿음에 이르게 하는 길잡이 노릇을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 역시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볼 시간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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