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성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삼위요 일체이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주일입니다. 이 교리는 이해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려운 내용입니다만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어쩌면 이런 신앙에 이른 것은 가장 큰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삼위일체 신앙보다도 더 분명한 하나님인식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긴 <아다나신안 신조>를 고백했습니다. 어려운 내용입니다만, 알기 쉬운 말로 설명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야훼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으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 앉아계시는 그런 점잖은 하나님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을 위해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지금도 우리들의 평범한 삶 속에 오셔서 우리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역할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목사이면서 교수이고 동시에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인 것처럼, 한 사람이 세 가지 역할을 할 수 있고 그래서 세 가지 다른 이름을 가질 수 있습니다만, 그 보다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성부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우리들의 역사 속에 구세주로 오셨던 성자 하나님이시며, 마지막으로는 지금도 우리들의 삶 속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믿는 자녀이기 때문에, 남다른 특권과 함께 사명을 가진 값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특권에는 반드시 엄청난 의무가 뒤따르게 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눈을 떴습니다. 이런 횡재가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여러 차례 해외여행을 갔을 때, 처음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분에 넘치는 환대를 받았습니다. 지난 12월에는 중국 공산당원인 호텔 사장에게서 <할렐루야!>라는 인사와 함께 따뜻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시체말로 공짜는 없습니다. 특권을 누리기 때문에 그에 맞먹는 의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을 라틴어로 <노블리스 오블리게>라고 합니다. 신분에 걸맞는 의무이행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사도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다운 고난의 멍에를 당당하게 짊어져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에 들어가기 위해서 주님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받는 고난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품위있는 고난이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시편기자는 주를 위해서 종일 죽임을 당하는 일이며, 도살할 양처럼 취급받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고난없는 기쁨이 없으며, 십자가없인 면류관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고난이 자랑스럽게 여겨져야 합니다. 최상의 의무이행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오늘, 우리들은 야훼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인간중심적인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매사에 책임적인 자세로 능동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훈련받았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래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과는 정반대로 살아왔다는 말입니다. 뒤늦게 제대로 살아야 하겠다고 깨달았을 때는,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자신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이 낯설 뿐 아니라, 기피하는 엉뚱한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능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수동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서 사는 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하고 따르는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우리들의 몸으로 세상에 보여주는 일입니다. 바로 우리들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의 도구들인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일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 삼위일체로 우리들 삶의 현장에 친히 오셔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런 은총을 입었기에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순종할 거룩한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 2003년 6월 15일 박성완 목사님의 주일예배 설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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