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32(2000.11.9, 목요일)
성경말씀 : 잠언 29:11.       
찬송 : 474장.
제목 : 어두운 감정이 생길 때 우선 붙들어 두십시오.

1. 오늘도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어제 출석을 불렀는데, 여섯 분이 응답을 해 왔습니다. 오늘만 건너 뛴 경우이기를 바랍니다. 옥수동 교회 교우들은 믿는데가 있으니까, 조금은 지각도 하고 졸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큰 소리로 대답해 주신 여섯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여러분으로 인해서 기운을 낼 수가 있습니다. 대부분 긴 여운을 남기는 대답을 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까지는 기대를 안했는데 말입니다. 특히 멀리 미국에서 임구원목사님 사모님과 이현경선생님께서 가장 긴대답을 해 주셨는데 감사드립니다. 저는 어제 [카톨릭과 개신교]라는 일본에서 사역하고 있는 천주교회 신부님이 쓰신 책을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은 차분하게 자신이 가진 교회관을 또박또박 말씀해 내려가셨습니다. 물론 읽으면서 개신 교회 특히 루터교회의 목사로써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그 분의 말씀을 통해서 나와 우리들의 교회 이해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많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크게 감동을 받은 것은, 자신이 가진 신앙과 교회에 대해서 분명한 자기 이해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에게서 찾을 수 있는 가장 부끄러운 면을 들킨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잘 쓰는 말, “잘 모르는데요.”라는 말 때문입니다. 모르는 것이 자랑이라도 되듯, 아무 생각 없이 말할 수 있는 우리들, 그렇습니다. 틀려도 좋으니까, “저는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요.”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틀려도 확실하게 틀린 줄 알아야 고치든 깨닫든 희망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서론이 길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읽을 만한 얇은 책입니다. 

2. 사람들이 가진 감정 중에는 밝은 것도 있지만, 어두운 감정도 있습니다. 밝은 감정은 얼마든지 드러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아름다운 마음, 용기와 희망을 나누는 마음을 통제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어두운 감정이 생겼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슬프거나 노여움에 가득한 감정, 혹은 상처난 감정이 있을 때는 정말 주의를 기우리지 않으면 심각한 낭패를 겪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어두운 감정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고, 손해를 보아 왔는지 모릅니다. 오늘 성경은 이런 감정 관리에 대해서,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를 잘 비교해 주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어두운 감정을 통제하지 않은 체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 멋대로 내버려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어두운 감정이 생겼을 때는 철저하게 통제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이른바 미숙아와 인격자의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누구에게나 분노와 격정이 있게 마련입니다. 자기 스스로 만드는 노여움이 있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얻게 되는 노여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이것이 마음 아픈 현실입니다. 그래도 예의를 갖출 거리감을 갖는 사람에게는 생각이나 말에 있어서 심사숙고하는 경향입니다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생각 없이 자기 기분이나 생각을 가볍게 드러내기 쉽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루에도 열 두 번씩이나 상처를 얻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부모나 형제에게서, 그리고 친구에게서 심지어는 존경하던 스승이나 목사에게서도 이런 마음 아픔을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지체없이 되받으시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까닭은 그런 감정은 너무 자주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피할 수 없는 흔해 빠진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루 종일 화를 내게 될 것이고, 하루 종일 전쟁터에서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런 감정을 억제하는 일을 서둘러 하라는 말씀입니다. 

5. 베델성서연구 생활편에 보면, 화난 개들의 고삐를 꽉 붙들고 있는 손 그림이 있습니다. 호전성의 감정, 복수심에 불타는 감정, 분쟁을 좋아하는 감정, 잔인한 감정, 노여움 등 등. 이런 감정이 생길 때, 그 원인이 무엇이든 자 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런 감정들을 꽉 붙들고 놓아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붙잡아 놓아야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지, 일단 놓게 되면 누구도 겉잡을 수 없는 일파 만파의 풍파를 일으키고 말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두운 감정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습니다. 붉게 타는 노을이나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바라보면서도 마음의 상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왜 날 이렇게 외롭게 만드는가 해서 말입니다. 이러한 때에 되는대로 가보자고 하시겠습니까?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두운 감정은 무조건 붙들고 놓고 보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억울하고 아무리 마음이 상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감정이 조금도 밖으로 뛰어 나오지 못하도록 억제해야 합니다. 지혜자와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어둔 감정만 통제하면, 여러분은 훌륭한 사람으로 살아갈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저 유명한 말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는 말씀을 좋아합니다. 주님께로 가면 그냥 쉼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지신 멍에를 멜 때, 비로소 마음에 평안히 온다는 말씀이 말입니다. 왤까요?  주님의 멍에는 억지로, 마지못해서 지는 멍에가 아니라 즐거움으로 짊어지는 사랑의 멍에인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괴로울 땐 주님을 바라보라는 복음가가 있습니다. 내가 겪고 있는 아픔보다 훨씬 더 큰 상처를 안고 계시는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그 주님의 얼굴에는 평화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평화의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지켜 주십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이를 위해서 기도로 응답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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