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2212(2007. 6. 7. 목요일).

시편 시 95:1-5.

찬송 35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젊은 영화감독이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영화감독을 할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말이 워낙 없기 때문이지요. 영화감독은 많은 배우와 스텝에게 일을 설명하고 지시하고 또 전체적인 분위기를 끝없이 관장해야 나가야 하지요. 그런 역할에서 말이 거의 없다는 것은, 큰 결점이기도 한 것입니다. 특히 그 결점은 그냥 말이 없는 개인적인 성격으로만 그치지 않지요. 가령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미리 만나는 상황에서 입니다. 감독 자신은 실제로 만나 배우가 훨씬 더 마음에 들었지요. 영화에 자신감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말을 거의 안 하다 보니까, 상대방 배우는 내가 맘에 안 드나보다 실망을 하거나 포기를 합니다. 그래서 일이 엉뚱하게 잘못되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그 성격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것은, 당장에 말이나 대화만이 교감의 다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을 같이 할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신다던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도 물론 소중하지만, 잠깐 보고 별 말없이 헤어진다 해도, 그 뒤에 계속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어떤 식으로 일할 것인가? 그 배우에게서 무엇을 끌어낼 것인가를 생각하는 시간도, 똑 같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아닌 게 아니라 그런 효과 덕분에, 말이 너무 없다는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 감독 김지훈 감독은 [조용한 가족], [반칙 왕]같은 영화들을 성공시킬 수 있었겠지요. 하고 있는 일과 개인적인 성격이 전혀 달라 보이거나 안 맞는 것 같아 보여도, 그래서 안 될 거다, 실패할 거다, 무조건 단정할 수만은 없는 거겠지요. 성격상 그 일에 안 맞을 것 같은데, 더 잘 할 수 있는 또 다른 면이 있기도 한 것, 그게 일과 성격 간에 알 수 없는 독특한 함수관계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KBS FM 1, FM가정음악, 2007525일 방송>

 

2. 예수님 주변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은 12제자들 못지않게 훌륭한 조연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필요하다면 악역도 충실하게 맡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조연자가 되는 것은 반가울 수 없겠습니다만, 그러나 누군가는 맡아야 할 역할입니다. 오늘은 갈릴리와 베레아 지방을 통치하던 분 봉왕 안티파스 헤롯의 흉계를 귀띔해주는 한 바리새인이 등장합니다. 그는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수님이 헤롯의 음모에 희생되지 않기를 바라는 진심으로 충고했습니다. “여기를 떠나시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흉계를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라”(33) 고 말입니다. 매일 매일이 고만 고만한 변함없는 날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특별한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순간순간이 미룰 수 없는, 해야 할 분명한 일들을 가진 날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내일, 그리고 모레는 중요한 일들로 가득 채워야 할 날들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다고 하셨는데(33), 그 착한 바리새인은 헤롯 안티파스를 피해 가는 길이 오히려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가 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모르고 한 말일 것이나, 알고 한 말이었다면 그는 구제받을 수 없는 악한이겠지요.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 바리새인을 비롯해서 우리들은 사는 자리와 죽는 자리를 구별하기에는 너무도 어리석고 모자란 사람들이 아닙니까? 역사를 많이 배웠다는 사람도 역사의 흐름을 까맣게 잊고, 토해낸 것을 다시 먹는 개처럼, 어리석은 되풀이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차라리 죽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그런 자세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음을 피해 달아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차라리 잘 죽기 위해서 오늘, 내일, 그리고 모레를 더욱 치열하게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하십니다. 더 이상 아쉬울 것도 또 후회할 것이 없는 삶을 만들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이며, 그리고 내일과 모레를 가슴 벅차게 맞이하는 이유라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이해와 사랑, 용서와 섬김으로 가득 채운 날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3. 오늘 저는 제 조카의 서울 대학교 음악대학원 졸업연주회에 참석하려고 합니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때까지만 해도, 4개의 점포를 운영하며 회장님 소리를 듣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처럼 보였습니다. 70평 아파트에 부러울 것이 없었지요. 그런데 한 순간에 그 모든 재산을 잃고 거리로 내 몰렸습니다. 넉넉함에 길들였던 생활이 더욱 힘들게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찾아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눈뜨게 한 바른 신앙이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아픔 때문에 교회를 더욱 잘 섬길 수 있었습니다. 겸손과 근면을 잘 배운 조카에게 신앙이 여전히 힘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의 2시간에 걸쳐 부를 노래에 박수를 쳐 주려고 합니다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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