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2209(2007. 6. 4. 월요일).

시편 시 94:11-15.

찬송 33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김용택 시인의 시 <그 여자네 집> 가운데서 인용합니다.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섬진강 물줄기처럼 맑은 그리움을 전해 주는 김용택 시인의 시집 <그 여자네 집>,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고 하면서, 세상이 아름다운데 왜 눈을 가리고 있냐고, 그 눈을 뜨고 아름다운 그리움에 빠져 보라고 가만히 속삭여 주는 시집입니다.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다리 아리는 시린 물로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 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선운사 동백꽃>을 읽고 나서 마음에 뚝뚝 붉은 동백꽃이 질 때쯤에, 그 장편 서사시 <그 여자네 집>을 만날 수 있지요.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집.” 시를 읽다가 아련한 그리움의 꽃 길 속으로 들어선 그런 기분이 들 때쯤에, 이 시는 우리를 <겨울의 그 여자네 집>으로 안내합니다.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거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 온다. .’ 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치 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어두운 김치 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치 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 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그 여자네 집.” 눈 내리는 마당, 그 여자가 어리는 방 앞에 서서, 나직이 여자를 부르는 모습이 떠오르지요? 그 때쯤에 시는 마지막 여운을 우리에게 던져 줍니다.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가 있던 집. 그 여자네 집.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시간은 흘러갔지만, 그 세월 속에 마치 분실물처럼 남아 있는 그리움이 있지요. 마음은 옮겨 갔지만 그 마음속에는 남겨진 이삿짐처럼 그리움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사랑은 버려도 그리움은 남아 있고, 몸은 늙어도 그리움은 늙지 않고, 사람은 죽어도 그리움은 살아 있어서, 꽃이 핀다고 꽃이 진다고, 마음의 언덕 위에 하얀 깃발을 날리곤 하지요.<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419일 방송>

 

2. 회개에 대한 가르침은 언제나 심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회개의 중요성을 종종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로마에 항거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그 피를 로마병사들이 자신들의 제물에 섞어 사용하기까지 한 사건이나, 우연한 일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18명이나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런 슬픈 역사적인 사건들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생길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비극은 찾아올 수 있습니다. 마치 멀쩡하던 사람이 일하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올 수 있는 일과 마찬가지이겠지요. 지금도 어떤 누군가에게는 그런 슬픈 사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비극이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가깝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런 난데없는 벼락같은 재난이 이를 수 있는데도, 회개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입니다. 그보다 더 낭패가 있을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회개의 중요성에 눈을 떠야 하겠습니다. 회개는 먼 훗날이나, 내일로 미룰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회개는 잘못된 삶을 뉘우치고 그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구체적인 행동을 말합니다.

   그래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6-9) 말씀하십니다. 회개는 죄라는 것의 반대편에 자리한다고 하겠습니다. 빗나간 방향으로 치닫는 삶이 죄라면, 그 빗나간 삶의 방향을 정 반대로 바꾸는 행동이 회개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방향 전환을 열매 맺는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전히 마음을 흔드는 설교를 하고 있지 않은 거겠지요. 마음은 흔들었지만, 여전히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아니, 아직 행동을 촉구하기에는 자극이 덜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어떤 극단적인 말로 자극을 준다고 해도, 그 효과는 매우 잠시 뿐일지 모릅니다. 결국 죽음의 문턱에서 하염없이 눈물 흘리겠지요. 어리석은 삶을 돌이키라고 말씀하십니다. 헛된 일에 목숨을 걸지 말자는 말입니다.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고, 섬겨야 할 때 섬기자는 얘기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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