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217.

시편 52:1-3.

찬송 10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조선시대의 최고의 실학자였던 다산 정약용선생은 정조의 총애를 받은 관료였지요. 하지만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부터오랜 유배 생활을 해야 했는데요. 선생은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머물던 주막집 단칸방에 사의제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네 개의 덕목을 실천해야 하는 방이런 뜻의 사의제는 이런 원칙이 담겨 있습니다. “생각은 맑게, 용모는 단정하게, 말은 과묵하게, 행동은 중후하게.”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는 그 답답한 그 마음을 자중하면서 보냈던 다산 선생은, 집필활동에 전념하고 또 아들이 보고 싶어질 때면 편지를 썼는데요. 선생은 두 아들에게 몇 번이고 이런 글을 썼다고 합니다. “물려줄 재산이 없으니근과 검 두 글자를 유산으로 남긴다.” 어쩌면 이 유산이야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강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721일 방송>

 

2.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신앙생활의 첫 걸음입니다. 이곳 행당동에서 첫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도구들을 봉헌하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새삼스러운 일 같지만, 자주 확인할 일들입니다. 예배자 뿐 아니라, 예배 도구들도 모두 주님께 드려져야 하는 때문입니다. 이것이 깨어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다시 생각합시다. 깨어있는 삶은 무엇입니까?

 

깨어있는 삶이란 바른 정신을 가지는 일입니다(25-26. 29-30).

세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세상 풍조를 따르기가 쉽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합니다. 우리 시대는 축재를 최고의 성공으로 생각하는 경향입니다. 대학교수건 국회의원이건 심지어 검사와 목사까지 그런 부류에 끼어들고 있습니다. 사회 전반적인 현상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깨어 있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어떤 환경이나 처지에서도 바른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특히 기독자는 바른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해도 그래야 합니다. 바른 정신으로 살지 않는다면, 그가 가진 신앙이 잘못된 것이며, 그 결과 또한 그렇습니다. 사택 이사에선 점심 때 여덟 명 일꾼 중 팀장이 소주 한병을 청해서 그깟 것 하며 허락했는데힘들었습니다. 교회당 이사 땐 일곱 명 일꾼들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힘든 일도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목사가 바른 생각을 해야 하고, 기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른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악한 풍조는 멸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34-36).

깨어 있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악한 세력 악한 풍조는 멸망과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입니다. 영원히 풀 수 없는 난제 중 하나가 악의 기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악을 소멸치 않고 그냥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입니다. 선한 삶과, 악한 삶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미술계의 석학 최순우 선생이 좋은 그림을 그리기를 원하는 제자들에게, 나쁜 그림을 보여주며 감상평을 쓰라고 했더랍니다. 일고의 가치가 없는 그림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정작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말입니다. 닮을 대상이 필요한가 하면, 닮지 말아야 할 대상도 필요하다는 말이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풍조는 멸망의 길을 달음질 하는 사람들을 닮으려 하고 있으니, 확실히 비뚤어진 세상입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거짓과 불의로 출세하는 이들을 부러워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단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악한 세력과 악한 풍조를 멸망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깨어있는 신앙은 그리스도만 의지하는 것입니다(28, 33, 36).

우리들 신앙인이 깨어 있기 위해서 경계해야 할 것은, 심리적인 노력이나 도덕적인 훈련으로 깨어 있으려는 일입니다. 물론 약간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 가장 평온할 때나 가장 도덕적인 수준에 올라섰을 때, 도리어 타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랬고,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바울도 그랬습니다. 이런 주장을 인본주의적 자세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서 기자는 말합니다. “머리를 들라!”, 그리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라고 말입니다. 주님을 향해서 머리를 들라는 말씀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 감격을 상상하며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제게 가장 힘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앞이 캄캄해서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때입니다. 그 때 제게 가장 큰 힘과 위로가 되었던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볼 때였습니다. 바울 사도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그래서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만을 의지하겠다고(고전 2:2) 당당하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