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370호 (2013. 5. 4. 토요일).
시편 시 89:11-14.
찬송 37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골목길 중간에 <주의> 라는 팻말이 섰습니다. 한동안 하수도 공사를 하느라 어른 키만큼 깊숙이 패여 있었는데, 모래와 석회와 시멘트가 햇볕과 바람에 마를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한 학생이, 주의 팻말을 보고 잠시 망설입니다. 건너뛸까 말까? 뛸 수 있을까 없을까? 어여차 허공을 날아 뜁니다. 무사히 건너편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기는 한데, 학생의 얼굴엔 낭패로 가득합니다. 마르지 않아서 질척거리는 석회와 시멘트 속에 한쪽 신발이 빠졌습니다. 지나가던 동네 어른이 혀를 차면서 학생을 탓합니다. “쯧쯧, 그러게 돌아서 가지. 저기 주의라고 걸어놓은 것 못 봤어?” 학생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신발을 겨우 건져내서 돌아갑니다. 한쪽 발은 맨발인 채, 절뚝거리며. 주의라는 말이, 조심해서 하라는 뜻인지,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는 뜻인지. 알쏭달쏭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에는, 주의라는 팻말이 서 있을지도 모르지요. 조심해서 잘 해. 혹은 위험하니까 하지 마. 어떤 경우든 남 탓은 하지 마. 안 하면 제일 안전하겠지만, 위험한줄 알면서도 하고, 조심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성공보다 실패의 후유증이 더 오래 갑니다. 학생의 무모했던 도전의 결과가 한 동안 이 골목길의 발자국 문양으로 남게 될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제 부터입니다. 실패했으니까 다시 하지 말든지. 실패 해 봤으니까 앞으로 잘 할 수 있든지. 그리고 이 선택 앞에도 역시 주의라는 팻말이 서 있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5월 1일 방송>.
2.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질문은 지금 뿐 아니라,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 궁금증을 가진 사람 가운데 하나가 헤롯 대왕이었다는 게 오늘 본문의 한 대목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하늘나라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병든 자를 고쳐 주시고, 그리고 배고픈 사람들을 외면치 않으시고 먹을 것을 주신 사람으로 알려졌을 테니 말입니다. 적어도 권력가들에게는 정치적인 부담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이런 인사가 하나 등장해서 여와 야에 상당한 부담을 주듯 말입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놀라운 능력을 자신의 열 두 제자들에게도 전수하고 있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셨다고 말입니다.
제자도 라는 말이 한 때 유행어처럼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우리 기독교계 안에서 이었습니다. 제자가 가는 길은 뭐 특별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과연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운 사람들이 교회 안에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며칠 전에 60대 후반의 여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놀라운 것은 예수님을 닮으려는 사람들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허세와 거짓과 술수를 다 동원해서라도 행복한 것처럼, 부자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것 앞에서는 교회에서 무엇을 배웠는가를 의심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오늘의 기독교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제자의 삶을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이 말씀 앞에서 너무 부끄러운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문자적인 해석은 금물이겠습니다만, 근본적으로 신앙의 목표를 땅에 두지 말라는 뜻임에는 분명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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