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072(2020. 9. 26. 토요일).

시편 시 106:9-11.

찬송 45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용제 어머님께> 자급자족하는 화가로 살겠노라고 다짐하고, 강원도까지 들어와서 민박집을 하는 동안에,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졌습니다. 아내=나 저는 생계의 방편으로 시작한 이 민박 일에서 의외로 많은 것들을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고요. 인영니라는 게 그렇더군요. 이게 다리 놓기 공사와도 같아서, 한쪽에서만 열심히 공사를 해나가면, 완성도 느리고 도중에 그만 포기도 되고 그러지요. 그런데 서로가 양쪽에서 상대방을 향해서 마음을 열고 다가서기 시작하면, 금세 중간에서 만나서 편하게 서로 오고 갈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잠깐 머물다 가는 곳이라, 다들 떠날 때 잘 계시라고 인사하고 떠날 뿐인데, 윤제 어머님은 좀 다르셨지요. 찍은 사진 정리했다고 챙겨서 보내주시고, 윤제가 그림 공부 시작한 이야기도 함께 적어 보내 주셔서 이 적적한 곳에서 저희 부부도 잠깐 즐거웠습니다. 제 그림 방네는 아직도 윤제가 그린 <비오는 날>이라는 그림이 붙어있지요. 잠깐 배웠을 뿐인데, 창문 밖으로 비오는 풍경들과 굵고 가늘게 아직 서툰 붓질로나마 제법 운치 있게 그렸었지요. 그렇게 윤제 마음속에 그림그리기에 대한 즐거움이 싹이 터서 아마 그림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가 봅니다. 오가는 많은 손님들 중에 아이들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노는 것도 제가 참 좋아하는 일이지요. 아이들은 마음의 밭, 심전이 참 윤택하거든요. 선입견이라는 거친 돌멩이들이 없어서, 마음을 담아서 이야기하면 종이에 묵이 스미는 것처럼, 아이들 마음속에 이야기들이 잘 스며들거든요. 그날 윤제가 그랬습니다. 비오는 것도 찬찬히 바라보면 재미나다는 제 말을 무시하지 않고 잘 받아들이더니, 척척 <비오는 날>이라는 그림 한 장을 그려냈지요. 평소에 부모님께서 자주 자연을 접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시더니, 은연중에 그런 시간들이 마음속에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근사한 놀이시설도 없는 이곳, 보이는 것은 산과 개울뿐인 곳을 또 찾아주신다니, 저희들이야 고마울 뿐이지요. 외진 곳이라 저희에게야 누가 찾아온 다는 소리가 제일 반가우니까요. 이런 인연에 감사할 뿐입니다. 날자 잡히면 꼭 연락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71일 방송> b.

 

2. “목자와 양(1-6)”착한 목자(7-18)”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둘째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본문은 전형적인 계시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소개해 주심으로 알게 된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착한 목자라는 표제어는 그 반대어 악한 목자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가장 많이 혼란을 겪는 문제가 성경 언어를 일상 언어처럼 생각하는 경향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착하다는 말을 도덕적인 의미로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성경언어는 그 본래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아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선한 목자 혹은 좋은 목자로도 번역되는데, 그 의미는 제 구실을 하는 목자라는 뜻입니다. 목자의 구실을 제대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의미를 확대하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는 의미 역시 보시기에 제구실을 다 하고 있구나.”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구실을 하는 목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제구실을 하는 것은 대단히 특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만물은 제구실을 하도록 만드셨고,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확인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여섯 동안 만드신 만물에 대해서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다.” 말씀하신 때문입니다. “보시기에 제구실을 다할 수 있구나.” 하는 뜻입니다. 목자가 제 구실을 다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양들의 이름은 물론 그들의 처지를 훤히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배가 고픈지 목이 마른지 어디가 아픈지, 잠이 오는지 뛰어놀고 싶은지 등 등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양들의 소망이 무엇인지조차도 잘 알고 있는 목자가 제구실을 하는 목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구실을 하고 있는 존재들일까요? 남편으로서 혹은 아내로서, 부모로서 선생과 학생으로서 제구실을 하고 있을까요? 대통령이 구실을 하고 있는지, 국회의원이 구실을 하고 있는지, 목사가 구실을 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볼 일입니다. 오히려 이런저런 자리를 이용해서 제 뱃속만을 챙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이 엄청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구실을 하는지 감시 감독하는 권한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 권한을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사람들을 눈감아 주고 있다면 가장 바보 같은 민주시민일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