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078(2020. 10. 2. 금요일).

시편 시 106:30-33.

찬송 50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팬숀 숲속의 빈터 주인아저씨께> 안녕하세요? 명준 이네 가족입니다. 한바탕 수선을 피우고 떠났기 때문에 아마 잊기 어려우실 테지요. 오늘 일러주신 계좌번호로 미처 치루지 못한 잔금, 그리고 비상금하라고 빌려준 돈 함께 보내드렸습니다. 달랑 돈만 보내고 나니 저희가 느낀 고마움을 전달할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홈 페이지에 글 남깁니다. 부잡스럽기 짝이 없는 연년생 사내 녀석 둘을 데리고 여행을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힘이 들었던가 봅니다. 낯선 곳이라 애들은 평소보다 더 흥분되어 있지, 챙겨야 할 물건들은 많지, 그런 와중에도 여기저기 구경은 해야 하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지갑하나 잃어버리고 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싶을 만큼 정신이 없던 나날이었어요. 그런 와중에 또 인터넷에 맛집으로 소개된 곳을 꼭 들려보겠다고 고집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결국 팬숀에 돌아와서 쉬려고 할 때, 남편 지갑이 안 보이는 것은 알았지요. 평소에 제가 더 덤벙거리는 편이라, 저는 동전 지갑정도만 내려왔다가 그런 일을 당하니 정말 황당하더라고요. 그런데 주인아저씨가 곁에서 차근차근 카드 회사에 전화해서 지불정지 시키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들을 처리해 주셔서 마음이 참 든든했습니다. 저희가 들렸던 모든 곳에 전화하셔서, 최선을 다해 찾아보려고 노력해 주신 것도 정말 고마웠고요. 여행 중에 그런 일 당하면 더 쉽게 냉정을 잃고 부부싸움으로까지 번지기 쉬운데, 아저씨 덕분에 웃으면서 해결할 수 있었네요. 처음 지갑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을 때는 저희가 부주의했으면서도, 에이 이 동네 다시 오나 봐라, 이렇게 비이성적인 불쾌감이 솟구치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돈 생각하지 말고 마지막 날까지 잘 쉬었다 가라고 붙잡아 주셔서, 마음이 다 풀렸었답니다. “마음 푸세요. 나중에 웃으면서 생각할 날이 올 겁니다.” 이렇게 조용조용 저희를 다독거려 주셨는데, 그 말이 맞더군요. 그런 소동을 겪었는데도 편하게 잘 쉬었다가 왔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덕분에 당황했을 때, 더 차분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요. 또 사람에 대한 희망, 믿음을 지킬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814일 방송> a.

 

2. “눈물을 흘리신 예수(28-37)”다시 살아난 나사로(38-44)”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겉으로 들어난 모습이나 말투를 볼 뿐, 바다보다 더 깊은 그의 마음속은 그리고 그의 오래 묵은 감정을 이해할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연구하는 이른바 <기독론>에서 기적을 행사하고 중병을 고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짐작하고, 오늘 본문에서처럼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에서 사람의 아들이심을 언급하곤 합니다. 며칠 전 아산 집의 정수기를 돌봐주시는 분이 카톡에 추석인사를 보내왔습니다. 행복한 추석명절을 보내시라는 문자도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신기루 같은 말들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 중에 행복이라는 말도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행복이라는 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체로 운명적으로 좋은 이웃들 속에서 사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정말 행운이라도 찾아와야만 그런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행복은 그런 행운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어제 도봉산 둘레길 산책에서 도토리를 줍는 허리 굽은 노파를 만났습니다. 그분의 뒤를 따라가다가 저도 한 움큼 주웠습니다. 그리고 그 노파의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주었습니다. 1 쉼터에서 싸들고 간 간식 청포도를 먹다가 옆에 계신 다리를 저는 아저씨에게 몇 알을 말없이 건넸습니다. 그게 행복입니다. 행복은 만들 수 있는 것이고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삶에서 언제든지 찾을 수 있고 배울 수 있습니다.

   우는 사람과 함께 울어주는 것,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겠거든 얼마 전에 별세하신 고종 사촌을 떠올리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동생 마리아는 주님을 보기가 무섭게 원망 섞인 한 마디를 내뱉습니다.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제 오라비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고통은 자신의 현실에 주님의 부재(不在)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주님의 눈물은 그래서 더 북받쳤는지 모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문제와 고통에 늘 동행해 주시기를 원하고 있는 연약한 신앙이 너무도 마음 아프셨을지 모릅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우리 방식대로 효력이 발생하는 줄로 생각하는 경향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으며, 귀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들 마음에 좌정(坐定)하신 주님을 바라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행복을 만들고 느낄 수 있듯, 벌써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들 마음속에 계신 조용히 주님을 부를 수 있는데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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