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077호(2020. 10. 1. 목요일).
시편 시 106:26-29.
찬송 15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길 위의 아들에게> 네 엄마는 아직도 절반쯤은 네가 괜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비행기 타고 차타고 떠나는 해외여행이, 혼자 걸어서 우리 땅을 여행하는 것보다 위험하지 않다고 여기나 보더라. 너무 더워도 비가 많이 와도 네 걱정이지. 그럴 때마다 버스라도 타고 다니라고 할 것이지, 마냥 걷는 여행을 권했다고, 나에게 날벼락이 떨어지곤 한단다. 그렇지만 난 네가 걱정스럽지 않아. 걱정스럽기는커녕 네가 부럽기만 하구나. 젊어서 한번쯤 그렇게 철저하게 자신의 몸을, 육체의 모든 부분을 가동해 보는 것 멋진 일 아니겠니? 인간도 동물이고 동물은 뿌리가 아니라 다리를 갖고 잇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더 넓게 더 멀리 떠돌아 봐야 않겠느냐 말이다. 그런데 현대 생활에서 우리 몸의 위치는 날마다 뒤쳐진다고 하지. 언젠가 미래에는 인간이 이렇게 변할 것이다 라는 가상도를 보는 데, 가장 많이 퇴화된 부분이 바로 다리더구나. 옛날과 현대를 비교했을 때, 인간 활동에서 다리가 가장 극적으로 퇴화하는 것이, 바로 걷기를 안 한 탓이라고 하더라. 그렇지만 난 젊은 날, 배낭 하나 메고 무작정 우리 땅 여기저기를 떠돌 때 느낀 그 강인한 자유, 두 발이 가져다 준 자유를 잊을 수가 없었지. 아마 너도 느꼈을 것이고 또 계속 느낄 것이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나, 또 마을과 마을 사이, 한 없이 긴 신작로, 산 길, 개천 길을 걸을 때나, 모두 즐겁고 담대해 지는 그 독특한 도보 여행의 느낌말이다. 세상은, 들판은, 마을들은, 도보 여행자에게만 온전하게 제 모습을 열어 주거든. 자동차로 편하고 쉽게 지나치는 사람에게는 극히 평면적인 겉모습만을 보여주지만, 도보 여행자에게는 그야말로 온전한 제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곤 하지. 네가 그렇게 우리의 땅과 그 땅의 사람들을 구체적이고도 입체적으로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내 가슴마저 뛰는 것 같다. 네 덕분에 오랜만에 가슴이 설레는 느낌을 다시 맛보는구나. 스스로를 잘 조절하고 절제해서, 끝까지 알차고 건강한 도보여행이 되길 바란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8월 13일 방송> b.
2.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17-27절)”을 읽었습니다. 나사로의 삼 남매는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도 아니면 예수님을 보려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는 마을 주변의 무덤에 묻혀 있었습니다. 오라비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시는 주님께, 마르다는 속내를 비추고야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오라비는 죽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구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줄 압니다.”라고 말입니다. 마르다의 말 속에는 무서운 뼈 한 개가 틀어박혀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기 계시지 않아서 문제”라고 말입니다. 우리들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모든 문제는 주님께서 우리를 홀대하신 때문이고, 굽어 살펴주지 않으신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들 인간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가장 먼저 화살을 쏘아붙일 대상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지혜인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다면 속병이 나서 죽을지 모릅니다. 저의 모친은 2시간짜리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10여분에 끝나지만, 그 뒤로 어머니의 길고 긴 기도는 시작됩니다. 대부분이 원망의 내용들입니다. 저 철부지 아홉 자식들을 저 혼자 어찌 키우라고 허락하신 것입니까? 말이 되는 기도입니까? 말이 됩니다. 그런 기도 덕분에 저의 모친은 78살까지 사셨는데, 또 다른 원망의 대상인 아버지보다 30년을 더 사신 것입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말싸움이 날 수도 있었지만, 주님은 얘기의 화살을 돌렸습니다. “네 오라비는 살아날 것이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마르다가 “압니다. 알고말고요. 마지막 날 부활 때는 다시 살 것을 저도 압니다.” 마르다에게 하신 유명한 말씀이 주님의 입에서 나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예, 주님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우문현답이거나 동문서답이 아니었습니다. 북 치고 장구 치며 적절한 추임새를 넣는 그야말로 환상 궁합을 이루는 대화였습니다.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될 것이고, 생명의 원천이셨습니다. 이 진리를 믿는 사람들은 지금도 후에도, 여기서도 거기서도 영원히 살아갈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말씀)이신 주님을 믿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깐죽대지 말고 믿는 게 상책입니다. 생명에 관한한 주님이 우리보다는 언제나 한 수 위인 때문입니다. 믿을 때만 이해되는 진리입니다.
3. 즐거운 추석 명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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