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145호(2020. 12. 8. 화요일).
시편 시 119:21-24.
찬송 6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꿈의 고향 엄마에게> 성적도 나쁘지는 않으니 4년제 대학을 가는 게 어떠냐고, 선생님도 엄마도 권했을 때, 전 생각해 봤어요. 저야 복잡한 생각은 싫어하고 또 심오한 생각, 이런 것과는 거리도 먼 사람이라서, 그냥 아주 간단한 기준만 정했었어요.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이런 기준. 그런데 딱 엄마 생각이 나던걸요. 다른 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재봉틀을 아직도 유용하게 사용하는 우리 엄마. 그 엄마에게서 내가 배운 것들이 제일 재미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엄마는 미처 모르고 있었겠지만, 제 모든 행동의 뒤에는 철들고 나서부터 보고 들은 엄마의 모습이 들어있답니다. 그러니 엄마는 제 꿈의 고향인 셈이지요. 제 원피스를 만드는 엄마 곁에서 천 조각으로 어설프게 필통도 만들고 지갑도 만들어 보던 시절을 거쳐서, 드디어 대학에 들어와서 정식으로 옷본을 뜨고 처음으로 옷을 만들어 볼 수 있었을 때, 그러니 얼마나 기뻤겠어요. 물론 엄마의 걱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답니다. 꿈을 꾸기는 쉽지만 그 꿈으로 뭔가를 이뤄내는 것, 또 그 꿈으로 제 앞가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겠지요. 하지만 어떤 길을 가든 그런 장애물은 놓여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세계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닥쳐올 어려움들이 내가 고민한다고 해서 줄어들 확률은 결코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밝게 사는 것이 좋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한 적이 있는데, 딱 제 마음을 대변해 주는 글 같았지요. 머리 아프게 앞날을 고민하는 것 보다는, 그냥 재미있고, 밝게 열심히 해보려고요. 이제 엄마도 이렇게 열심히 응원해 주시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옷 장 속에 꽁꽁 감춰 놓은 엄마의 꽃무늬 봄 원피스, 그것도 제게 기증해 주실 순 없으신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12월 10일 방송> b.
2. “마지막 권면과 작별 인사(12-28절)”을 읽었습니다. 1969년 11월 초 저는 전남 광주 광산구의 한 작은 교회당에서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제가 군 복무 중 2년 여 동안 설교자로 일했던 비아교회입니다. 군종사병도 아닌 주제에 어쩌다가 그 작은 교회의 주일학교 학생회를 지도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주일 오전예배 오후 예배 그리고 수요기도회까지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참으로 비장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것을 권고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고교시절에 학교가 운영하던 주일학교의 교사로 활동했던 것이 무자격 무보수 전도사로 발탁된 것입니다. 제가 정식으로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을 때, 그 교회의 한 청년이 저를 찾아왔던 기억이 나고, 아주 오랜 후에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제가 인도하는 강습회에 참석해서 재회하는 기쁨도 가졌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도 농어촌 교회는 아직도 지도자가 없는 현실입니다. 사도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지도자들을 사랑하고 극진히 공경할 것과 화평하게 지낼 것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게으르거나 소심한 교우들을 격려하고 붙들어 줄 것을 부탁합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생사에서 자주 있는 일이지만, 신앙 안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주님 앞에서 재회할 것을 믿는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생각을 꺼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 모두에게 바라시는 뜻을 전한 것입니다. 곧 항상 기뻐하는 것, 늘 기도하는 것, 어떤 처지에서든 감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θελημα 델레마)라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란, 우리들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일까를 묻는 사람들에게는 금과옥조와 같은 권고가 될 것입니다. 물론 저처럼 질문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기뻐할 일도 없는데 어떻게 기뻐하며, 다른 할 일도 넘치는데 어떻게 늘 기도하며, 감사할 이유가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데 어찌 감사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힘써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가 사랑하는 데살로니가 교우들에게 남긴 마지막 권고니까 말입니다. 주님의 날의 기억하며 예배드릴 것, 수입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 어머니의 유언이라 지킨 친구가 있었습니다. 성격이 불같아서 늘 말썽꾸러기로 살았는데,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사도의 유언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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