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9(2000.12.16, 토요일)
성경말씀 : 벧전 1:13-16.
찬송 : 508장.
제목 : 성도의 구별된 생활.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주제는 우리들이 계속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삶의 목표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기자는 몇 가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얘기들을 요약하면 “거룩한 자가 되라.”입니다. 거룩한 사람이란 말은, 높은 도덕성과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이 훨씬 성경적입니다. 보통 사람 혹은 세상 사람과
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몸짓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3.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실 은혜만을 사모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금 모습과 구별된 성도의 모습과를 비교해 보십시다. 우리가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몸을 삼가서 오직 한 가지만을 구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대부분의 기독인들이 이 땅의 축복을 달라고 매달리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사업이 잘되고, 자식이 잘 크고, 몸이 건강해지며 등등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 구별된 사람은 주님께서 훗날 가져다 주실 은혜만을 사모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어찌보면 이런 구별된 사람들은 이 세상과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땅의 것을 구하지 않을 만큼 몸과 마음이 여유롭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들은 작은 것 보다는 큰 것을 언제나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땅의 축복에 대해서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더 큰 것인 영원한 축복을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언어생활에 새로운 습관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런 말을 자신과 이웃을 향해서 항상 사용하는 우리들 자신이 되도록 말입니다.
4. 그 다음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을 사욕을 좇던 옛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욕망을 버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이라는 말은, 자기 자신의 의지나 뜻을 죽이는 것과 다를바 없는 가장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합니다.”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그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순종이란 자기 포기라는 말과 동의어 이며 희생을 요구하는 말을 뜻합니다. 이것이 성도로 구별되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우리 기독인의 삶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피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비교적 잘 훈련된 새벽기도인입니다. 그래도 종종 피곤한 느낌 때문에 일어나기 싫고 지금처럼 감기로 고생할 즈음에는, 많은 충고의 말들에 솔깃해 합니다. “감기는 새벽기도가 문제다.”는 등. 그러나 순종하기 위해서 내 자신의 합리적인 생각이나 유혹을 과감히 내버려야 합니다. 억울한 생각으로 기도회에 나간다고요? 그게 은혜스러울 수 있을까요? 질문이 쏟아질 수 있습니다. 결론은 이렇듯 나 자신을 포기하고 순종의 제물이 되었다고 생각될 때처럼 더 행복한 순간이 없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십시다.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애쓰는 삶인가? 고 말입니다.
5. 마지막으로 구별된 성도의 모습은, 행실에서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는 구절을 찾을 수 있습니다(행11:26).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 혹은 작은 그리스도들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입으로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행실로도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동양적인 사고에서도 이런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도를 신자라는 말로 사용하는데, 信者란 그가 하는 말이 행실에서 모순되지 않고 진실되게 나타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를 관찰할 차례입니다. 엊그제 삼계탕집에서의 일화를 말씀드렸습니다만, 여전히 한국에서 기독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여러 가지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낮부터 술잔을 기우리지 않는 것이, 어찌보면 한국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요소일지언정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소주를 맥주병에 마시면서 목사님의 설교를 얘기하는 것은 아직은 구별된 성도의 모습은 아니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보편적인 사회적 공감대를 역행하는 모습인 때문입니다. 물론 소극적인 구별된 모습보다는 적극적인 모습을 더 강조해야 할 것입니다. 오른 손이 하는 선행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던지, 절제되고 향기나는 삶을 위해 부단히 땀 흘리는 모습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할 것입니다.
6. 성도로 세상에서 사는 일은 마치 미운 오리 새끼처럼 살아가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성도의 삶은 불신의 바다위에 홀로 떠 있는 작은 나뭇닢같다고 하겠습니다. 시셋말로 톡톡 튀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평범하게 묻혀서 살아가는 것을 거부해야 할 것입니다. 떼지어 물결처럼 함께 흘러가지 않고 오히려 그 거대한 물결을 홀로 거슬러 오르는 고통과 희생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래야 합니다. 몇 일전 결혼식장에서 많은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첫 눈에도 성공했다는 사람들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애써서 그것을 감추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제게 보내주는 인사는 따뜻했습니다. 그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성공과 실패와는 거리가 먼 낯선 이방인인 때문이었습니다. 나에게는 매월 만나는 동창회 모임 얘기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회비를 내야 한다느니 하며 돈을 거두면서도 내게는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장로가 된 사람, 큰 교회 회계가 되었다는 사람, 나름대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었지만, 차려진 음식을 놓고 고개를 숙여 기도하는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맥주잔을 돌리는데는 얼마나 익숙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겉 모습이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보일만한 속 사람은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까? “너는 목사니까 술 안하지?” 이렇게 물어오는 친구에게 “아냐, 가끔 한 잔씩 한다.”고 대답했다고 하십시다. “너 가짜아냐?” 금방 그런 핀잔이 나올 것입니다. 속과 겉은 다를 수 없는 하나여야 합니다. 진짜는 진짜의 겉모습과 진짜의 속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보여주려고 해도 속 마음은 보일 수도 보여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선 겉 모습에서 속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을 게을리 말아야 하겠습니다. 속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면 더 이상 할말이 없는 일이 아닙니까?
7. 제가 졸업한 거창고등학교 후배인 여학생들이 큰 일을 해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금년도 육사와 해사 입시에서 여자부 수석을 각 각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관학교 합격생들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일신의 영달에 앞서, 나라와 민족의 안위를 위해 살신성인하는 방패들이 되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주 안에서 오늘도 평안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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