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0(2000.12.17, 주님의 날)
성경말씀 : 벧전 1:17-21.
찬송 : 202장.
제목 :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2. 우리들 인간이 소망하고 있는 두 가지 명제는 평행선을 긋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유함의 세상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등함의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자유함과 평등함이 공존하는 그런 세상이 이상적인 세상이라고 소망합니다. 자유함은 개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평등함은 인간의 권리를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자유함은 민주주의 세계에서 터를 닦았고, 평등함은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세계에서 환영을 받았습니다. 자유함이 책임과 의무를 요구하고 있는 것에 반해서, 평등함은 윤리와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향(理想鄕-유토피아)은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말에서 왔다고 하니
까(헬라어 우 토포스), 어쩌면 인간의 자유함과 평등함을 존중해 주는 세상이란 이 땅에서는 영원히 기대할 수 없는 곳인데도 헛된 꿈을 키우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3. 오늘 본문은 사람이 제 값을 하며 살 수 있게 된 것, 다시 말하면 개성을 가진 자유인으로 자신의 권리를 누리는 평등인으로 살게 된 것이란, 금이나 은으로 값을 계산한 때문이 아니라,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 같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계산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는 자유함도 평등함도 없는 노예나 짐승 같은 강요된 삶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밑으로부터의 혁명, 풀뿌리 민주주의며, 인도주의 정신에 기초한 엄청난 사건들이 있고 난 다음에서야 비로소 자유함과 평등함이 조금씩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여전히 우리 인간들이 족쇄에 묶여 살던 그 어두웠던 시절에 전해졌던 말씀이라는데 주목한다면,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해방이며 자유를 말함인가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죄와 죽음의 사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죄와 죽음의 사슬은 주인이나 노예 모두를 묶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죄와 죽음의 사슬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고통은 불안과 두려움의 원인이었기 때문에 그 파장은 심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조금씩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무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죄와 죽음의 사슬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인간을 자유하지 못하게 하는 최후의 문제로써 죄와 죽음의 사슬 앞에서 절망감과 무력감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금과 은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을 있을 것입니다. 학력도 명예도 권세도 심지어 거짓을 진실로 바꾸는 일이나, 다른 이들이 부러워하는 결혼 상대자까지도 금과 은으로 살수 있는 그런 시대입니다. 실제로 2,3천년 전에는 사람의 목숨이나 자유를 금과 은으로 계산했었습니다. 성경은 그런 배경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죄와 죽음에서 자유함을 얻기 위해서만은 금이나 은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의 값은 죽음인 때문입니다. 이처럼 죄와 죽음에서 자유하는 길이 너무도 좁고 험하다는 말씀을 드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모릅니다. 성경은 단 하나의 길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것은 어린양의 보혈입니다. 구약에서는 실제로 죄의 값으로 치르던 제사에서 실행하던 것입니다. 죄의 크기와 성격에 따라서 제물은 달랐습니다. 그런데 그 대표적인 죄의 값으로 어린양이 등장합니다. 죄인은 따로 있는데, 그를 대신해서 죽는 것은 어린양이었습니다. 이것은 죄의 가공성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죄는 생명을 해치는 무서운 암덩어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마침내 어린양의 실체가 등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은 자신의 피를 온 세상 사람들의 죄의 값으로 내놓으신 것입니다. 

5. 오늘 우리의 자유함은 거져얻은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예수님의 보혈을 주고 산 값비싼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항상 기뻐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그 기초는 바로 이런 값비싼 은혜를 받은 데서 연유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취약한 것중 하나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진심으로 덧입고 살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감사합니다.”는 말이나 마음을 품지 못하고 오히려 “왜 납니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너무 하십니다.”고 하나님께 탄원하는 까닭이, 바로 주님이 주신 보혈의 공로를 값싸게 이해하는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기억합시다. 그것이 십자 성호를 긋는 가장 큰 목적입니다. “주님은 날 위해 보혈을 흘려주셨습니다. 나는 그 보혈로 자유함과 평등함을 누리는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고 고백하며 살도록 도와주는 십자 성호입니다. 

6.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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