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654.

시편 시 73:13-15.

찬송 5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 아빠는 아기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연구도 하고요, 어른들에게 도움도 구하기도 하면서, 많은 노력을 기우리지요. 또 요즘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태명이라 고해서 미리 이름을 지어놓고 많이 불러주던데요. 막연한 대상으로 부르는 것 보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더 각별한 애정과 의미를 갖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KBS FM 1, 새 아침의 , 2007428일 방송>

 

2. 오늘은 부활절 셋째 주일로 부활절 기간에 행전을 읽는 전통을 따라, 행전 9:1-22을 본문으로 회개의 위력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신앙인으로써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큰 힘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놀랍게도 회개입니다. 단순히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회개의 사건이 아니라 회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회개가 그런 큰 힘을 가진 것일까요?

 

회개의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1-9).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인물은 사울이었습니다. 출세지향적인 성격의 사람이었지만, 그는 문자 그대로 유대교 신앙에 투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당시의 이단자로 취급받던 예수쟁이들을 즉결 처분권까지 받아서 유대전역은 물론 이웃나라까지도 쫓아다니면서 예수쟁이들을 잡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신앙이란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인 박해를 당한 우리 인류사에는 포악하고 잔인한 근본주의자들이 있었는데, 사울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 주님은 그런 사울을 찾아가셨습니다. 요르단의 수도 다마스쿠스에 다다를 즈음에, 백주 대낮에 그보다 환한 빛 가운데서 그를 불러 세우셨습니다. “사울아, 너는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물으셨고, “당신은 누구십니까?”고 되물었습니다.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고 대답하신 후, 주님은 그에게 앞으로의 사명을 주셨고 그를 지도할 인물을 소개하셨습니다. 사울은 눈을 뜰 수 없었고,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사흘을 지냈습니다. 회개는 주님을 만날 때 시작되었습니다.

 

회개의 과정에는 주님께서 예비하신 또 다른 일꾼을 통해서였습니다(10-19).

우리가 살아가는 인류사를 하나님의 구속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참여하시는 것보다는 우리들 인간을 앞세워서 진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에서 말하는 창조된 세상을 인간에게 맡기신 뜻이었습니다(1:26-28). 이런 의미에서 우리들 모든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일터인 세상에 부름을 받은 일꾼들이라 말해야 합니다. 사울을 부르신 주님은 그를 깨우치고 훈련시킬 일꾼을 다마스쿠스에 준비시켰는데, 그 이름이 아나니아입니다. 그러니까 유대교의 율법에 능통하고 실행력이 있는 사울을 능가하는 지도자를 준비해 두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안수해서 눈을 뜨게 하는 환상을 아나니아에게 보여 주신 후, 그의 두렵고 주저하는 마음을 이겨내게 하시고, 욥바에 머물고 있는 사울을 찾아가, 그간의 경위를 전한 후 성령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고, 세례를 주어 강건한 사람으로 회복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거듭나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회개는 예수를 박해하던 자를 예수를 증거하는 전도자로 역전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20-22).

우리는 회개라는 성경의 단어를 보다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개는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이라고 사전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조차 회개라는 말을 상투적인 관용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회 예배에 참석할 때만 사용하는 용어로 말입니다. 회개라는 말을 뉘우침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는 결과입니다. 그러나 회개라는 성경 언어는 메타노이아라는 말로, 방향을 바꾸는 행동하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시궁창에서 푸른 하늘로 눈길을 바꾸고, 죄를 향해 달려가던 삶을 하나님의 은혜를 향해 감사와 찬양하는 삶으로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사울은 회개의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더 이상 예수를 박해하는 포악하고 잔인한 살인자가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전하는 평화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매일 매일을 회개를 결심했던 세례를 기억하며 살아야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3. 오늘은 주성농인 교회(우슬초목사 시무)에서 설교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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