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658호(2022. 5. 5. 목요일).
시편 시 73:27-28.
찬송 24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이가 어른을 감동시킬 때는 이런 때인 것 같습니다. 어른의 굳어버린 머리로는 도저히 생각 못하는 기발함, 때 묻은 마음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천진함, 그런 것들이 우리를 즐겁고 놀랍게 하지요. 어린이들은 현장의 즉석 시인이고, 움직이는 어린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별이 떴다고 말하는 아이, 구름이 움직인다고 잠자리채를 들고 옥상으로 뛰어올라가는 아이, 인형이 춥겠다고 이불속에 재우는 아이, 아이스크림 하나로도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이. 그런 아이들의 날, 어린이 날 아침이네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년 5월 5일 방송>
2. “십계명을 받다(1-21절)”을 읽었습니다. 제가 협력목사로 출석하는 교회는 매 주일 예배 순서에 십계명을 함께 낭독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러니까 사도 신조(경)와 주기도와 함께 십계명을 모두 낭독하는 것입니다. 사도 신조와 주기도를 하는 것은 익숙한 일인데 십계명을 매 주일 예배에서 낭독하는 것이 낯설었지만, 지금은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쉐마를 쉬지 않고 교육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농담이나 세상의 잡소리를 섞어 예배 시간을 축내는 것에 비해서 너무 알찬 예배라고 생각 들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은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규범으로, 가장 대표적인 율법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떤 학자가 조사를 해서 지금은 상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유대인이 지킬 율법은 613가지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613가지는 긍정적인 248개의 율법과 부정적인 365개의 율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중세시대의 저명한 유대인 랍비 마이모니데스(Maimonides)인데, 이를 풀어쓴 저의 대학 후배인 허호익 박사는 “248이라고 하는 숫자는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부분의 총합이라고 한다. 365라고 하는 숫자는 1년을 뜻한다.”고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나, 십계명을 비롯하여 모든 율법을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자칫 야훼 하나님 신앙을 부정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모든 말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심 정신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가령, 십계명 1계명은 우리 찬송가에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요약했는데, 이는 “야훼 하나님만이 유일무이한 하나님이시다.”는 것이 중심 정신이라고 말입니다. 그 밖에도 각 계명의 중심점을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인하지 말지니라.”는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돌봐주어라.”는 의미로, “간음하지 말지니라.”는 “이웃의 가정을 순결하게 지켜주라.”라는 뜻으로, “도적질 하지 말라.”는 “남의 소유물을 보호해 주어라.” 라는 의미로,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는 “진실한 말로 진위를 밝히라.” 라는 뜻으로 말입니다. 어떤 구체적인 문제 앞에서는 좀 더 적절한 중심점 찾기가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차제에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맥락적 읽기를 권장합니다. 다행히 성경에 장(章)과 절(節)을 붙여서 쉽게 찾거나 인용할 수 있다든지, 단락을 구별 짓거나 주제를 붙여서 읽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장과 절 그리고 단락을 구별 짓는 것은 13세기 이후에 생겨난 일이며, 몇 군데서 잘못 분류되었음이 명백하긴 하지만, 성서공회에서는 그 실수를 잘 알면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또한 감사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도 실수 많은 인간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서 너그러운 마음을 품어보자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십계명을 자주 읽고 묵상하는 것의 가치와, 가능하면 부정적인 이해보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맥락적으로 중심 주제를 찾아내는데 주목해 보자는 것이 저의 진솔한 권고임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3. 오늘 어린이 날엔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소중한 존재로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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