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18호(2023. 1. 20. 금요일).
시편 시 119:5-8.
찬송 30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베거나 가볍게 다쳤을 때 붙이는 밴드에도, 약이 발라져 있는 것이 있습니다. 특별한 연고나 소독약을 바르지 않아도, 작은 상처는 이러한 밴드 하나를 붙이는 것만으로도 잘 낫곤 하지요. 헌데 또 요즘 인기를 얻고 상처 치료법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런 치료약 없이 상처를 덧나게 하는 균이 들어가는 것만을 막아주는 밴드더군요. 상처를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오히려 자연 치유력을 높여서, 약으로 치료했을 때보다 시간은 좀 더 걸릴지 모르더라도, 흉터 없이 가장 본래의 피부 상태로 회복한다고 말입니다. 어쩌면 마음에 얻은 상처를 회복하는 방법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부러 낫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기 보다는, 마음이 저절로 치유되는 시간의 힘을 믿는 거지요. 지금 힘든 순간들도 언젠간 다 지나갈 테니까 말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월 20일 방송>
2. “자녀와 부모(1-4절)”과 “종과 주인(5-9절)”을 읽었습니다. 짧은 구절이긴 하지만, 이 두 단락은 따로 따로 묵상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주제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자녀와 부모, 혹은 부모와 자녀는 가족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입니다. 동시에 모든 인간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과 존중 그리고 신뢰의 원형(元型)이라는 뜻입니다. 어제 뉴스는 온통 자신의 아버지를 2시간이나 때려 숨지게 한 50대 아들의 이야기가 신문과 방송을 통째로 집어 삼키고 있었습니다. 작년 6월 25일에 벌어진 사건이긴 합니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부조금이 적게 들어온 것과, 자신과 상의 없이 부친이 매각한 부동산이 오름세를 보이자 화가 나서 그리했다는 것인데, 지난 달 17일 이 아들에게 내린 선고는 징역 30년이었습니다. 이런 시대 분위기와는 아랑곳없이 오늘 본문은 “자녀된 사람은 부모에게 순종하시오.”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크리스천의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못을 박고 있습니다. 부모는 누구이고 자녀는 누구입니까? 어찌하여 성경은 모든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순종하라고 명령하실까요? 그것은 자신의 뿌리 또는 근원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자녀를 생산하고 바르게 양육하는 의무와 책임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존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경외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는 약속이 첨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땅에서 복을 받고 오래 살리라는 약속입니다(신 5:16). 다른 계명들에는 이런 약속이 전혀 없기 때문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에게는 땅에서 행복하고 장수를 누리며 살 수 있는 반면에, 부모를 홀대하고 그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레 20:9, 24:15-16, 신 27:16). 그러므로 부모공경은 부모님을 위한 말씀이기 보다는 오히려 자녀인 후손들을 위한 약속의 말씀이라는 점입니다. 그동안 이런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서 강조하지 못하는 것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가끔 인용하는 실화이기도 합니다만, 미국 세미너리에서는 실습교회로 파송하는 학생들에게 파송증서를 수여하고 있었는데, 서양 학생은 파송증서를 한 손으로 받아 되돌아 나오는 것에 반해, 동양 학생은 먼저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두 손으로 증서를 받고 또 허리 굽혀 인사를 한 후 회중을 향해서도 허리를 굽힌 인사를 한 후, 강단을 내려오는 장면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동양 도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장면이기도 해서 코끝이 시큰둥했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시대가 변한다 해도, 여전히 자신의 뿌리이며 근본을 존중하는 세상이 계승되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신다는 뜻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3. 엊그제 대학 동창들의 오찬에서 상견례는 모자 벗기로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해방둥이 중 생일이 맏인 제가 머리숱이 조금 더 남아 있었습니다. 많이 웃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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