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62.

시편 시 119:137-139.

찬송 23, 519, 39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의 인내나 노력이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동물들이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깊고 크다고 합니다. 직접 움직일 수 없는 대신에, 오래 참고 또 엄청나게 많이 준비해서, 자신의 개체수를 지켜가고 늘려간다고 하는데요.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한계가, 오히려 더 강하게 버틸 수 힘으로 작용하는 그 이치 배워둘만하다고 생각합니다. <KBS FM 1, FM가정음악, 200834일 방송>

 

2. 사순절 둘째 주일의 복음서 요 3:1-17을 본문으로 구원 : 장대와 십자가를 바라봄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유대인의 최고 지성인이라 할 수 있는 니고데모와의 한 밤중의 토론에는 두 가지 주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거듭남의 진리이고, 다른 하나는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기독교회의 구원관이 그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이미 출애굽기에서 예고하셨습니다(14-17, 21:8-9).

일반종교에서는 도덕적인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경향입니다. 마치 하늘에 닿는 사다리를 놓고 오르는 구원을 가르칩니다. 이른바 공덕을 쌓는 일인데, 민간신앙이나 불교가 그 대표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와 기독교는 전혀 다른 구원의 길을 가르치는데 오늘 본문입니다. 출애굽 과정 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마르고 거친 광야에서 굶어죽는 줄 생각하고 격렬하게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이들을 불 뱀에 물려죽게 하셨습니다. 모세의 탄원으로 죽음의 골짜기에서 구한 것은 불 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로 긴 장대에 달린 놋 뱀을 바라보게 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장대와 나란히 비교한 본문 역시, 죄와 죽음에 허우적대는 인류에게 십자가를 바라보라 말씀하십니다. 장대나 십자가에서 나오는 어떤 신통력이 아니라, “바라보면 살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구원의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주제입니다(1-7, 6:68).

니고데모와 주님 사이에 나눈 한 밤중 대화는 우리들 기독교인이 깨달아야 할 진리의 정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거듭남이 없이는 구원을 향한 수고는 헛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난다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려 했기에 불가능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물과 성령으로 가능하다 대답하셨는데, 우리가 받은 세례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거듭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 증거는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의 현존(現存)으로 믿고 순종하는 삶이면 충분한 때문입니다. 그러나 표징을 구하는 사람들은 어떤 외적 변화에서 거듭남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방언과 신유 같은 현상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거듭남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주님을 떠나갈 때에, 제자들은 영생의 말씀이 주님께 있으니 떠나지 않겠다 고백했습니다.

 

세례 받은 사람도 세파에 흔들릴 수 있지만 그래도 주님은 돌봐주십니다(8-13).

아프리카 선교에서 열매를 맺지 못한 요한 웨슬레는 낙담하며 귀국선에 올랐는데, 그가 탄 배가 엄청난 파도로 배에 물이차고 뒤집어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떨고 있는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떼의 기도하는 사람들 모라비안 선교단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웨슬레로 위대한 목사로 변화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세례 받은 사람도 믿음이 흔들릴 수 있고, 시련과 역경 앞에 던져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의 뿌리가 더욱 단단하게 자리 잡는 기회일 뿐, 쓰러지거나 절망하는 일이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복음가 중에 <Remind Me Dear Lord>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그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소중히 아끼는 내 삶의 모든 것 주님께 빌린 것이죠. 나의 나됨은 모두 주님의 은혜인데, 연약한 인간이라 자꾸만 잊어요. 그러니 기억나게 해 주세요.” 주님께서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우리가 혼자라 생각할 때는 주님께서 우릴 당신의 등에 업고 계실 때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3. 오늘은 주성농인교회(묵상식구 우슬초목사)에서 설교하려고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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